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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Yo Feb 25. 2018

좋은아들이 되고 싶다.

#엄마#좋은아들#과거#이야기 

대학을 졸업한 이후 백수라는 신분 하에 집안의 식량을 축낸 지도 어느덧 일주일째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백수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 직장의 질이 달라진다고 들었는데, 졸업과 동시에 찾아온 불편한 자유 속에서 내가 하는 거라곤 그저 방구석에 틀어박혀 키보드 두드리는 일이 전부였다. 엄마는 그런 내 눈치를 보며 뭔가 생산적인 일이라도 좀 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나는 제발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말고 그냥 신경 끄라는 되도 안 되는 발언으로 맞받아쳤다. 도대체가 나는 왜 내가 걱정이 되어 꺼낸 엄마의 진심에 저딴 식으로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정말 내가 봐도 참 못난 새끼다.    

     

하루는 저녁을 먹기 위해 냉장고에서 반찬거리를 뒤적거리는데 뜬금없이 엄마가 외식을 하자고 했다. 심지어 메뉴는 삼겹살이란다.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배꼽시계를 진정시키고 나서 엄마를 따라 시내 부근에 있는 고기 집으로 향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엄마와 단 둘이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것도 고등학교 졸업식 때 이후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새빨간 삼겹살이 뜨거운 불판 위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목격하며 엄마와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잠시 후,    


“너 혹시 선종이 아니니?”        


모자간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 한 마디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환하게 웃고 있는 중년여성 두 명이 서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에 누군가 했더니 엄마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란다. 이름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는 엄마의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 것 같았다. 재빨리 일어나 엄마 친구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다시 자리에 앉아 고기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라더니 꺼내는 이야기라곤 죄다 자신의 아들자랑뿐이었다. 호피무늬 코트를 걸친 아줌마는 자신의 큰 아들이 이번에 캐나다에서 최고라고 거론되는 은행에 들어갔다고 하고, 이에 질세라 금은방 사장님 포스를 풍겨대는 금목걸이 아줌마는 자신의 아들은 이번에 명문 대학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내세우며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자신의 아들을 신격화시킬 필요가 있나 싶었다. 눈꼴사나운 아줌마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호피 무늬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그래, 선종이 아들은 요새 뭐하고 있니?”             


생각지도 못 한 기습 공격에 잘 넘어가던 고기가 순간 목구멍에 걸려 도로 뱉을 뻔했다. 마치 나를 깔보는 것 같은 얼굴을 한 아줌마에게 험한 말도 내뱉고 싶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저 얄미운 아줌마의 질문에 당당해질 수가 없었다. 현재의 난 그저 한낱 백수신분에 불과할 뿐더러 그들의 아들을 더욱더 빛나게 만들어줄 조연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차마 대답할 거리가 없어 저는 얼마 전에 졸업하고 저만의 세계관을 글로 표현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할까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엄마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요새 취업준비에 한창이라 정신없을 거야.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자기가 알아서 잘 할 거라 믿어”    


태어나서 정말 이렇게까지 자존심이 상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평소 엄마는 내가 자신의 자존심이라고 종종 이야기해주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뭐라고 한들 좋게 웃어넘길 순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자존심을 모욕하거나 더럽히는 것만은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엄마는 방금 전, 항상 누누이 이야기하던 자존심을 오랜 친구들에게 비교 당했고, 심지어 그 자존심은 처량하다 생각될 정도로 눈앞에서 무참히 짓밟히기까지 했다. 그런데 엄마는 화는커녕 오히려 내 눈치를 살피며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아줌마들 이야기에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속으로는 얄밉게 아들자랑을 줄줄이 늘어놓는 친구들을 보며 얼마나 창피하고 분했을 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아들의 축에 끼지 못해 그들의 아들들과 대적조차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그토록 좋아하는 고기마저 더 이상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심란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는데 엄마가 대뜸 밖에 나올 땐 옷 좀 깔끔하게 좀 입을 수 없냐며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그냥 웃어넘기면 될 것을, 그것에 또 짜증이나 제발 좀 상관하지 말라며 또 한 번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말았다. 이정도면 못난 아들이 아니라 못된 아들인 게 확실하다.        


그 뒤로 몇 달 뒤, 한 밤 중에 홀로 방 안에서 서럽게 흐느끼게 되었는데, 무심결에 확인했던 엄마의 메신저 대화명이 화근이었다.        


‘요새 발이 유난히 시려우니 족욕기는 필수로 살 것!’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 짤막한 문장 안에서 왠지 모를 쓸쓸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마는 예전부터 우리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예를 들어 엄마 생일날, 동생과 돈을 모아 비싼 향수 같은 것을 선물한다고 하면,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정을 내고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계속 마다하며 앞으로 이런 건 절대 사오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꺼내곤 했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우리의 진심을 몰라주는 엄마에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엄마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건 자식들에게 조금의 부담이라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바보 같은 엄마에게 비싸고 특별한 선물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첫 월급을 타자마자 큰맘 먹고 엄마의 대화명에서 확인했던 족욕기와 오만 원짜리 네 장이 채워진 봉투를 준비해 엄마에게 선물했다. 비록 내 통장 잔고의 수명이 줄어드는 상당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 순간 0의 개수 따윈 그저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했다. 역시나 엄마는 예상대로 쓸데없이 이런 걸 왜 사오냐며 타박했지만, 입가엔 미처 감추지 못 한 환한 미소가 깊게 배어있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엄마의 웃는 얼굴이 이렇게나 예뻤는지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나는 정말 좋은 아들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아들이란 신조어로 ‘츤데레’ 같은 부류이다. 표현을 못하는 성격상, 겉으론 굉장히 무뚝뚝하고 냉소적일 수 있으나 그 무심함 틈에서도 언제나 엄마를 생각하며 아낌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아들이 되고 싶다. 더불어 엄마의 입에서 우리 아들은 이런 사람이야 라고 당당히 소개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아들이란 사람들을 죄다 모아놓고 한명 씩 돌아가면서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엄마가 저로 인해 행복해 질 수 있을 까요?’         


그나저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아,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사랑하는 우리 엄마 얼굴이 떠오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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