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과거의 내가 숨겨 두고 간 보물을 찾는 것
나의 첫 제주 여행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던 친구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계획을 짰다. 당시에 제주도를 자전거로 종주하는 게 유행이었다. 지금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언가를 계획할 때 체력적 요소를 고려한다는 점이다. 땡볕에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탄다는 게 얼마나 극기훈련인지. 현실보다 낭만을 좇던 그때 해봐서 참 다행이다.
급하게 떠난 우리는 오전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늦은 오후 제주에 도착했다. 자전거 대여점 사장님이 짜준 계획에 의하면 첫째 날 무조건 협재까지는 가야 했다. 거기까지는 가야 둘째, 셋째 날 무리하지 않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숙소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요즘처럼 게스트하우스 여행이 보편화 되기 전이라 숙소가 많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번화한 곳에 가야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가에서 만나는 민박집이나 여관에 직접 가격을 물어 방을 구했다. 1박에 2만 원짜리 방이 우리에겐 최선이었다.
자전거를 빌려 비장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다. 낯선 남도의 풍경에 들뜬 마음도 잠시, 곧 해가 지면서 어둑어둑해진 산길에 겁이 났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도 무섭고, 상상 이상의 것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숲 속의 어둠도 무서웠다. 체력이 떨어져 숙소를 구할 수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이 길이 맞는 건지조차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인생의 많은 일은 ‘진심으로 더 이상은 도저히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풀린다. 아무것도 없는 산길을 달리며 무섭고 힘들어서, ‘우리가 참 겁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자전거 페달을 돌렸구나’ 싶을 때, 갑자기 민가와 가게가 있는 사거리가 나왔다. 고작 상가 불빛과 교차로에 이렇게 큰 반가움을 느끼다니! 드디어 협재해수욕장에 다다른 것이다. 우리는 2만 원임을 확인하고 더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첫 번째로 만난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제주의 오래된 가옥의 바깥채에 딸린 방 하나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화장실도 바깥에 있고 에어컨과 침대도 없던 작은 방 한 칸이었지만 아늑했다.
다음 날 아침, 출발하자마자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협재 바다. 어제는 깜깜해서 몰랐는데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있었구나. 우리는 지금은 달려야 하니, 바다는 나중에 제대로 놀러 올 때 가자며 발 한 번 담그지 않고 지나쳤다. 당시 우리의 목적은 제주를 즐기는 것보다는 완주를 하는 것에 있었다. 여유 부리며 놀다가 혹여나 완주를 못하면, 돌아가는 비행기를 못 타는 줄로만 알았다. 이것은 여행인가 훈련인가. 끝까지 우리는 어느 바다에도 들르지 않았다. 다시 제주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았고, 그때 바다를 즐기지 못했던 게 한동안 무척이나 아쉬웠다. 지금처럼 저가항공이나 게스트하우스와 같이 저렴한 비용으로 제주 여행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생기기 전이었다.
절반을 넘게 달렸을 때였던 것 같다. 평소 운동량이 거의 없던 터라, 우리의 체력은 바닥나고 말았다. 이 상태로는 돌아가는 날까지 공항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체력을 보충하기로 했다. 제대로 아는 건 없었지만 들은 건 있어서 (지금은 먹지 않는) 보신탕을 먹기로 했다. 어느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보신탕을 먹었다. 보신탕을 끓여주신 할머니뻘의 사장님이 보시기에, 어린 여자애 둘이 제주까지 와서 보신탕을 먹는 모습이 신기하셨나 보다. 벌겋게 익은 우리의 얼굴을 보시며, 할머니 집(?)에 가서 오이마사지하고 가라셨다. 할머니랑 같이 가면 천지연 폭포도 공짜로 들어갈 수 있으니 가자고 하셔서 밤 산책도 다녀왔다.
보신탕은 효과를 보지 못했고, 셋째 날에는 거의 히치하이킹만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제주도에 히치하이킹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당시에는 자전거로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히치하이킹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실어야 하므로 승용차는 안 되고, 봉고나 트럭이어야 가능했다. 자전거 종주하러 왔으면서 왜 히치하이킹을 하냐는 핀잔도 들었다. 제주도 자전거 종주가 붐을 일으키면서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만 많아졌다고 하셨다.
여행을 마친 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길 위에서 느꼈던 그날의 느낌, 비슷해 보이지만 오묘하게 조금씩 다른 동네의 분위기들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우리는 줄곧 여기가 어딘지 모른 채 이동하기만 했기 때문에, 그 장면들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이름 없는 것들은 쉽게 잊히기 마련인데 고맙게도 이름 붙이지 못한 추억들은 내게 남아있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제주를 찾았을 때 살아나 주었다. 내가 여기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비교적 부담 없이 제주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후, 나는 5~6년 동안 매년 제주를 찾았다. 올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기억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곤 했다. 그때 이 길을 달렸어, 그때 여기쯤에서 히치하이킹을 했지, 그때 이 동네에서 쉬었어. 제주를 한 바퀴 돌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그때의 기억을 만났다. 오래전에 씨를 뿌려두고는 한 동안 잊고 지냈는데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어린 시절 숨겨둔 보물을 이삿짐을 싸다 발견하면 이런 기분일까? 10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써두고는 잊고 있었는데 편지를 배달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과거의 나를 들여다보고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제주에 사는 사람이 되고 나서는, 과거의 내가 숨겨둔 보물들이 불현듯 나의 일상에 나타난다.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했을 때뿐 아니라, 모든 제주 여행 때마다 여행자였던 내가 두고 간 보물이 갑자기 튀어나와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과거를 후회하고 지우려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나와 반갑게 만날 수 있어 좋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느낌, 연속성이 느껴져서 좋다. 좋아하던 여행지에 산다는 건 이렇게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