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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ry Oct 29. 2019

지상의 밤

위노나 라이더가 좋아서 쓰는 글



위노나 라이더, 코코샤넬, 오드리 헵번의 패션을 좋아한다. 지금 봐도 예쁜 무채색톤의 캐주얼하고 클래식한 옷과 그녀들만의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중 특히 위노나 라이더의 반항적인듯 반듯한 이목구비의 얼굴을 좋아한다.

그저 위노나 라이더의 얼굴을 감상하기 위해 넷플릭스에서 '위노나 라이더'를 검색했다. 몇 가지 영화가 나왔고 가장 끌리는 제목의 영화를 클릭했다. '지상의 밤'  


오프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화면이 우주 저 멀리서 점차 지구에 가까워지고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지상에 바짝 내려앉는다. 벽에 걸린 다섯 개의 시계가 나오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로 클로즈업된 시선은 단 하룻밤의 다섯 대의 택시 안에서 일어나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다룬 옴니버스식 영화이다.


영화를 즐겨 보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점점 영화의 취향이 생기는 듯한데, 그중 하나가 <지상의 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화양연화> <더 테이블>처럼 한정된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오직 공간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전개는 영화의 전달력을 높이고 몰입도도 높여준다.

마치 관찰자의 시선으로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집중력을 준다. 특히나 <지상의 밤>은 인물의 설정이 좋았다.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투와 행동, 그리고 다양한 성향의 인물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두 사람 간의 케미스트리도 좋았다.


제 작년 상영했던 김종관 감독의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주연의 <더 테이블>을 흥미롭게 봤었는데 <지상의 밤>을 보며 <더 테이블>이 떠올랐다. 오직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대화만으로 전개되는 단편 에피소드는 자극적인 전개 없이도 충분했고, 테이블 사이 혹은 택시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영상미와 특수효과 없이도 집중할 수 있는 '대화의 힘'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위노나 라이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섯 가지 에피소드 중에 위노나 라이더가 등장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정비공을 꿈꾸는 택시운전사 콜키(위노나 라이더)와 영화 캐스팅 에이전트인 빅토리아의 이야기이다. 빅토리아는 제작 중인 영화에 맞는 신인 배우를 찾던 중 콜키의 택시에 타게 된다.

골치 아픈 통화를 반복하던 빅토리아는 잠깐잠깐 콜키와 짧은 대화를 한다. 둘은 깊지 않은 친근감을 느끼고 빅토리아는 콜키를 보고 불현듯 본인이 찾고 있던 영화의 신인 배우로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콜키에게 캐스팅 제의를 한다. 하지만 콜키는 고민도 없이 거절한다. 거절하는 장면 중 콜키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택시 운전하는 게 좋은가 봐요?"
"사람들은 모두 영화배우를 꿈꾸잖아요. 뭐 물론 저도 영화를 좋아하고 아줌마도 진지하다는 건 알지만 뭐랄까 전 제 나름대로 삶의 계획이 있고 그 계획대로 잘되고 있거든요."
" 그 꿈을 버릴 수 없다는 거군요."



미래에는 정비공이 되고 싶고, 현재는 택시를 운전하는 게 좋은 택시 운전사 콜키. 운전을 하며 돈을 모아 정비소를 차리고 싶다는 것이 콜키의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며 그 길을 이미 본인의 계획대로 잘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민 없이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고 본인의 인생의 뚜렷한 주관과 계획을 가진 콜키를 보며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생각에 잠겼다.
각자의 삶이 있고 나름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이런 행운 같은 제의에 과연 얼마나 자신의 주관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에서 표현된 콜키는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손님들의 짐을 트렁크로 나르고 담배를 피우며 야간 운전을 하는, 어찌 보면 돈 버는 것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콜키에게 영화배우 제의는 너무 화려하고 꿈같은 일 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기회를 놓쳤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나는 얼마나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인생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 의해 뿌리째 흔들릴 인생도 아닌 내 인생을.
많은 생각을 주는 영화였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보게 된 영화인데 뜻밖에 명작을 찾아낸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끌렸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이다. 밤이 깊은 도시의 도로 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좋았다. 보랏빛 노란빛 빨간빛 등등 빛나는 네온사인과 깜빡이는 신호등들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들이 만들어낸 깊은 밤 도시의 분위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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