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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Nov 29. 2022

몸이 알려주는 마음

-마음의 거울은 몸인가?-

 요즘 나의 마음을 알 방법이 없다. 아무 일 없이 편안하다가도 뭔가 좀 우울한 것 같고, 그래서 눈물이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시원하려나 하고 일부러 슬픈 영화나 드라마만 골라서 보는데도 소용이 없다. 예전엔 조금만 분위기가 이상타 싶으면 내 생각과 상관없이 주르륵 나오던 눈물도 뭔가 불손한(?) 의도를 넣으려 하니 쏙 들어가 버린다. 겉으로 보긴엔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아니, 오히려 더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좋아하는 수다도 실컷 떠는데도 혼자 있는 호젓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침묵 또 침묵. 마음은 또 그렇게 홀로 길 잃은 방랑자가 되고 있다. 아무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더 좋은 시간이 찾아올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잊으려 하고 있지만 그래도 상실감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모든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날벼락같은 학교 일에, 사람 관계까지. 근 한 달, 내 주변엔 어지러움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강사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학교나 나만 혼자 짝사랑하고 있었구나, 나 혼자 목멨었구나를 느끼게 하는 지인들까지.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 스스로 가지치기하고 혼자 삭이는 방법이어서 이번에도 잘 지나가나 했는데, 나의 치유법이 이젠 내성이 생겼는지 약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잘 견디고 있구나, 모두 잊어버리자꾸나 해서 온 마음으로 다독이곤 했었는데 그렇게 내가 나를 잘 진단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우습게도 몸이 알려주는 모양이다. 


별 탈이 없다가 음식만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무겁다. 어떤 음료수나 소화제도 소용이 없다. 주먹으로 탕탕 가슴을 쳐도 등도 뻐근한 것 같고, 가다가 걸리고 목이 메어서 음식 먹기가 불편하다. 나 스스로 나를 좀먹으면 안 된다고 다독이고, 지인에게 화도 내 보고, 속 마음도 떠들어보고, 운동을 해 봐도 얼굴은 화끈거리고 그럴 때가 아닌데 땀도 나고 그렇다. 물론 갱년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요 며칠 나를 괴롭히던 생각에서 마음이 벗어나질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내 몸은 지금의 내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너 지금 괜찮지 않다고. 너 지금 속상하다고. 너 지금 평상시와 다르다고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평상시와 다르지 않는데 나를 보는 너희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우기고 이죽거렸다. 주위 사람이 한 마디 하면 괜스레 짜증 내면서, 여느 때면 웃어넘길 일인데도 분이 사그라지질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의 말과 그들의 마음을 의심하게 되고 떠보게 된다. 당신 정말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거야? 당신 정말 나를 위로하고 있는 거야? 혹시 고소하고 쌤통이다 하는 마음을 감추고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니야? 자기 일이 아니니까 마음에도 없는 입바른 소리 하는 거 아냐?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그 의심은 나를 끝없는 추락으로 몰아넣는다. 어디가 밑인지 알 수 없는 그곳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뭔가 부담이 되거나 걸리는 일이 있을 땐 꼭 이렇게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중요한 시험이나 행사가 있거나, 부모님이 검사 결과가 나온다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할 땐 매번 이렇게 속이 답답하고 체한 것처럼 힘이 들었었다. 병원도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먹어도 낫질 않더니 일이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속이 고속도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일이 다시 해결되고부터는 지인과 오해가 풀리고 나서는 내 마음을 결정하고 나서는 내 가슴엔 탄산수가 차올라 시원한 트림이 올라왔다. 



벌써 삼 개월 전의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모든 일은 쉼으로 해결했다. 혼자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수업받고, 운동도 끊고, 부모님과 시간도 많이 가졌다. 시간은 흘러가고, 내 삶은 계속 진행되고, 잊어버릴 뻔했던 여유도 다시 챙겼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그 간단하고 중요한 사실을 이제 다시 깨닫는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몸도 건강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여태 무시하고 있었다. 몸에 좋은 음식이 맛이 없고(?), 입에 쓰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더 건강해진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내 마음을 챙기기 전에 마음부터 편안해야 함을 온몸으로 알게 된 며칠이었다. 


오십 년 넘게 함께 해 준 내 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론 몸이 아우성 대는 소리에 잘 경청해 볼 요량이다. 지금도 내 몸은 너무도 정직하게 먹은 대로 살이 찌고, 피부 수분은 나이와 반비례하고 있으며, 머리숱도 예전 같지 않음으로, 눈 밑 깊어지는 주름으로 말을 걸어온다. 이제 당신은 슬슬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나이라고. 이제 당신은 살살 조용한 오솔길을 걷자고. 이제 제발 철 좀 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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