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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Dec 18. 2023

김솔통 같은 글 VS 널뛰기 글

-'다정소감 김혼비 산문집'을 읽기 시작하다가-

미루었던 책들을 꺼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한 독서회 책들이 옆으로 뉘어 있었다. 게 중엔  시간에 쫓겨 독서회 참석을 위해 급히 읽어 체해버린 책들, 관심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멀찍하게 밀어 놓았던 책들, 몇 장 읽다가 덮고, 몇 장 읽고 펼쳐 놓은 채 쌓여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내 시간표 안에 독서 시간은 없었다. 쓰기 시간도 없었다. 생활이 독서고, 쓰기인 사람들에겐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11월이 되어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나를 책꽂이 속에 사장시켜 놀 작정이냐고. 나에게도 생명을 달라고. 책들의 아우성과 나의 양심이 묘하게 겹쳐 책과의 눈싸움을 시작했다. 쉽게 시작하자 싶어 머리 아프지 않고 쓱쓱 읽혀나갈 책을 고르다 보니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이 손에 쥐어졌다. 작가의 통통 튀는 감각적인 표현과 세상을 향한 건전한 비꼼이 나를 금세 책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책장을 걷다가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라는 문장에 잠깐 내 손과 생각이 멈췄다. 나에게 글은 무엇일까? 난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왜 글을 쓰는 걸까?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김솔처럼) 잊고 있던 다른 무언가에 대한 재인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것들이 딱 김에 기름 바르는 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글. (다정소감 김혼비 산문집 중 19쪽)'


누군가에게 효용성으로 반가움을 주고, 어떤 이에게 새로움과 추억을, 뇌 속에서 깊이 잠수해 있던 기억을 되살리게 하고 다른 이에게 중요한 존재로 남는 글. 이런 삼 박자가 골고루 맞춰진 글은 어떤 글일까? 물론 이 중에서 한 개의 쓰임새로만 읽혀도 정말 반가운 일일 테지만 수많은 글의 홍수 속에서 함께 공감하고, 함께 기억하고 그들에게 유용하게 남는 글이란...... 정말 어려울 듯하다. 나를 돌아봤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많은 사람과 북적이며 얼굴 맞대고 오고 가는 남발된 단어들 속에 있기도 싫어하고, 그들에게 나를 내세우는 것도 싫어하면서 글은 왜 쓰는 걸까? 평론가도 아니면서 어쭙잖은 느낌으로 말도 안 되는 평을 하면서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에 대해 우울해하는 나는 왜 글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글이 반짝이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별들 속에 숨어버렸으면 하는 맘을 들여다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이 달아오르고 스멀스멀 땀이 나는 갱년기처럼 글을 향한 내 마음도 요즘 그렇다. 참 신기하다. 이렇게 글에 대고 푸념을 하다 보니,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에 대고 찡찡거리다 보니 글이 참 좋고 편하구나 생각이 든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지 알 수는 없으나, 아, 이렇게 끄적거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위안이 되는구나. 김혼비 작가의 '김솔통 같은 글'은 못되지만 그래도 오늘 내 글이 나에게만은 잠시잠깐 유용했음에 조금 안도한다. 그래서 나에게 글은 50대의 갱년기와 함께할 '널뛰기 글'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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