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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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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Apr 18. 2023

두 번의 뚝

두 번의 나무람, 두 번의 받아들임

"울지 마세요! 엄마 울면 아기가 더 힘들어!"

간호사 선생님의 따끔한 일갈이, 습관적 반존대가, 그렇게 다정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조금도 서럽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산모와 아기의 안위를 바라는 사람,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과 체력을 쓰고 있는 전문가. 그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눈물을 뚝 그치고 울음을 삼켰다. 눈물 대신 아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데에만 열중한 끝에 무사히 첫 출산을 마쳤다.


첫 출산 이후 수많은 첫 경험들이 지나갔다. 첫 나들이, 첫 이유식, 첫 돌...첫 입학.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전전전전긍긍긍긍했다. 나날이 도드라지는 ADHD 증상으로 유치원을 그만두고 하릴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나의 불안은 입학을 앞둔 여느 부모들의 그것보다 좀 더 깊고 짙을 수 밖에 없었다. 일단은 학교에 가자. 최악이래봤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뿐이다. 홈스쿨링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입학 후 2개월쯤 되었을 때, 기어이 사고가 터졌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도무지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많은 말과 시선들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를 낳기 전엔 상상해본 적 없는 참담함 속에서 내게는 넋을 잃을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소용돌이 속에서, 그날도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아침부터 유난히 가슴께가 들썩거리며 좋지 않은 조짐이 있던 날이기도 했다.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목이 탁 메었다. 지금껏 잘 참아왔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목구멍께에 쌓아놓은 둑이 허물어지기 직전이었다. 모르겠다, 이제 나도 한계야. 자포자기한 채로 온몸의 힘을 풀어버리려던 바로 그 때였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엄마가 울면 아이는 기댈 곳이 없어요!"

수화기 너머 선생님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다시 이를 악물었다. 아이 때처럼 손바닥으로 눈가를 세게 훔쳤다. 입을 앙다물고 눈과 코에 힘을 주었다. 어라, 더 참을 수 있었네. 아직 한계까진 멀었어. 더 참을 수 있어. 엄마니까. 내가 울면, 아이가 더 힘드니까.


순간 떠올랐다. 첫 출산 때 들었던 간호사 선생님의 외침이. 엄마가 울면 아기가 더 힘들다던, 그러니 울지 말라던 그 소름 끼치게 적확한 예언이,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비로소 나는 받아들였다. 이제 울어서 해결되는 시절은 끝났다는 사실을.




두 분의 선생님으로부터 두 번의 '뚝!'을 당하고 나니, 이후 생각보다 울 일은 많지 않았다. 울지 않고는 못 견딜 아픔, 목놓아 울어야만 풀어지는 슬픔 같은 건 살면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더라. 당장은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한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지금껏 만난 어떤 아픔도 출산의 고통을 넘어서지 못했고, 여태 겪은 어떤 슬픔도 아이의 눈물만큼 나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나날을 나의 슬픔에 잠식당하며 흘려보냈던가. 그 슬픔이 아이로부터 온다고 착각하고, 끝내는 아이를 원망하게 되는 어리석은 굴레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한때는 그랬다.

낳기만 하면, 유치원만 들어가면, 1학년만 무사히 보내면, 4학년만 지나고 나면, 끝인 줄 알았다. 고생 끝 행복 시작. 마침내 꽃밭 같은 어쿠스틱 육아 라이프가 펼쳐지는 줄 알았다. 사실은 아직도 기대한다. 중학교만 들어가면 좀 살만해지지 않을까?

웃음이 나온다.



아이를 키우며 많은 걸 배웠다. 울음을 뚝 그치는 법, 부당한 요구를 뚝 잘라 거절하는 법, 밥맛이 뚝 떨어질만큼 가라앉았을 때에도 나를 일으키는 법,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구는 너를 보면서 씁쓸함을 감추고 그저 웃어버리는 법...언젠가는 미처 느끼지 못한 사이에 저만큼 뚝 떨어져 있는 너와 나의 거리를 받아들이는 법도 배우게 되겠지.


엄만 분명 잘해낼 거야.

그러니까, 걱정 뚝!




* Homme - <밥만 잘 먹더라> 가사 인용

**표지 이미지 출처 :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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