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키몬스터 Jul 20. 2023

일에 대한 모호한 태도

맑시즘! 맑시즘! 맑시즘!

조울증 때문에 올해 초부터 일을 쉬었다 (미국 박사 과정이다). 백수로 산 지 7개월 차. 8월 말부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전에 그동안 느낀점을 간략하게 적어보겠다.


일단 싫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건 매우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한국에서 석사+박사 2년을 버티는 동안 내가 했던 자잘한 일들은 등록금 충당하는 데에 쓰였고 생활비를 거의 벌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최근에 느꼈던 자괴감도 새로울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었다. 다시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간도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주어지는 시간은 사실 잘 보내기가 쉽지 않다. 놀러 가기도 어렵고 잡생각에 빠지게 되는 지름길이다. 그러다보면 우울하고 우울하면 다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정신건강 때문에 쉬는 건데 쉬는 게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도서관에 갔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휴학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시험 준비를 하러 간 것도 있었지만 (사실 준비는 거의 마친 상태였다), 일상이 필요했다. 주어진 일이 없을 때 가장 빨리 찾아오는 건 무너지는 일상이다. 읽었던 책을 복습하고 구두시험을 위해 말하는 연습도 하고 미래에 필요할 글도 조금씩 썼다.


매일같이 갔던 광진도서관


뭐니뭐니해도 일의 장점을 꼽자면 그것이다. 일상이 주어지는 것. 물론 일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음악을 한다거나 프리로 글을 쓴다거나 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사무실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상과는 다르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일념은 차곡차곡 일상을 세우게 해준다. 원래 해야할 일이 있을 때 미루면서 쉬거나 노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그리고 사회적 위치가 확보되는 것. 서른이 넘으면 자기가 하는 일로 자기를 정의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사실 과장 보태서 99% 나는 나의 일로 정의된다. 저는 취미가 A입니다는 어학원에서 회화 연습할 때, 그리고 가끔 소개팅 같은거 나가면 해야하는 부차적인 이야기. 일 말고도 나에게 개인적으로 더 중요한 것들은 있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일과 동등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 이 말 많이한다)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기자본주의의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이다. 다른 사회를 꿈꿀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맑시즘과 반노동이론을 공부하고 노동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에 대해 글 쓰는 사람이다. 결국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일에 대한 찬사와 착취*가 동시에 만연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 없으면 불안초조 한건 당연하다. 개인들의 노오력도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외부적인 힘(intervention)을 통해 굳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예를 들면 기본 소득. 근데 아직 그걸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사회는 아닌 것 같고, 앞으로 더 방법을 찾아보자.


*착취에 대해서는, 같은 시간동안 노동을 했는데 왜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 다른 일에 대한 보상보다 더 큰가? 일의 사회적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우리는 우리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있는가? 등을 생각해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