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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몬스터 Jul 20. 2023

조울증을 앓는다는 것

아니 내가 조울러라니

2022년 하반기 조울증을 내내 앓았다 (당시에는 몰랐다). 증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일 심한 건 망상, 수면장애, 식욕부진이다.


조증상태일 때 망상이 일상을 가장 크게 방해한다. 정말 다양한 망상을 하는데,


-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나에 관한 말인 것 같다. ("걔는 그래서 일을 그냥 그렇게 처리하고 냅둘거래?"라는 말이 들리면 내가 뭔가 일을 잘못했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안다. 말 안되는 거. 그래서 병이다.)

- 환청, 환각 등을 경험한다. 누가 나한테 명령하는 것 같다. ("집에 있는 물건 다 버려." 진짜 버렸다. 거의 다. 그리고 후회가 막심하다.)

-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 것 같고, 사람들에 의해 관찰당하는 것 같다. 밖에 쓰레기 버리러 가기가, 마트에 장보러 가기가 무서워서 3일을 굶다시피하며 냄새나는 집에 틀어박힌 적도 있다.


안다. 너무너무 이상한 거. 그러나 이것도 실제 겪었던 자잘하고 다양한 증상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걸. 조울증이 단순히 감정기복이 심한 상태라는 인식이 사라졌으면 한다. 무서운 병이고 오래 내버려두면 악화된다.


결국에는 외딴 미국 시골에서 가출하고 3일 정도를 차 안에서 지내면서 도로를 활보했다. 가족이 실종신고를 해서 경찰 통해 근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퇴원 후에는 한국에 들어와 약 5개월 정도 요양했다. 일상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학교는 휴학을 했다 (미국 박사과정 중이다). 휴학 처리도 온전히 내 일이었어야 하는데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과 친구들의 도움에 의지했다. 고마운 마음과 크나큰 자괴감이 동시에 든다. 


조울증이 정말 위험한 이유는 환자 본인이 병식(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하는데 나는 환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병원에 갈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가족 포함 주위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고 강제로 입원시키는 경우도 생긴다.


어렸을 때 아빠의 조울증을 보면서 자랐고 지금도 가끔 발병하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그게 내 경우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번에 이런 일을 겪고 한국에 와서도 내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과 공포란.


아직도 병과 나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영혼의 동반자?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 병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얘랑 나랑 점차 건강한 관계를 확립하고, 나도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물론 약물 복용을 통한 치료가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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