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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잃고, 서울 아파트를 얻었다

이건 축하받을 일인가 위로받을 일인가

사건은 이러했다. 약 6개월간 대표님을 통해 끈질긴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한 지 딱 두 달 하고도 3일 되던 날. "지현 님 오늘 잘리는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날씨 좋은 초가을 금요일 오후 5시. 불금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말이다. 왓 더.


마음이 급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며 나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서울 아파트 매매'가 그것이었다. 7월 1일 이직 첫날 퇴근하여 계약을 했고, 10월 30일 잔금과 함께 아파트의 명의가 내 이름으로 바꾸는 것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회사에서 짤;리게 되면 신용이 사라지는 것이니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던 대출에 영향이 있을 것이요 그로 인해 계약이 엎어질 위기인 것이다. 왓 더.


집주인에게 사정사정을 하며 잔금일을 한 달 정도 앞당기고 싶다고 했다. 설상가상 정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계대출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빠른 속도로 대출을 규제해왔다. 매매 예정인 아파트 근처 은행들을 돌아다녀봐도 대출이 불가하다는 답변들 뿐이었다. 때마침 난 코로나19 첫 번째 백신 주사를 맞았다. 가슴이 영 뻐근하고 호흡이 가빠지는 증세가 있었는데 이게 백신의 후유증인 건지, 갑작스레 펼쳐진 이 사건들에 의한 가슴 벅찬 아 아니지 가슴 빡친 통증인지 구별도 가질 않았다.


일단 모든 신경은 '아파트 매매, 성공적 마무리'에 쏟았고, 그다음 '먹고 살 방도' 찾기. 그다음이 '나를 이 고통으로 몰아놓은 스타트업에 대한 복수 및 응징 방법 고민' 정도로 설계를 했다. 매 순간이 답답했다. 나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요청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특히나 이건 '돈'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었다. 감사하게도 한 평생 '급전 5만 원(축의금 내야 하는데 현금 없을 때)' 말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누구에게 도대체 얼마를 빌려야 하는 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이 상황이 말도 못 하게 답답하고 불안했다.


다행히도 초딩 시절 학교에서 단체 발급받았던 '한빛은행 어린이 교통카드'를 시작으로 약 20여 년간 꾸준하게 거래를 하고 있었던 '우리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승인을 받게 되어 아파트 매매 관련된 큰 산은 안전하게 넘을 수 있었다. 물론 담당 직원분과 대출을 진행하면서 회사 잘린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단지 아직 유지되고 있는 나의 신용 점수에 기댈 수밖에.

- “어린 나이에 월급도 많이 받으시고 아파트도 구매하시고 정말 대단하네요~ 요즘 젊은 분들은 확실히 투자에도 남다른 거 같아요^_^”

- “하하하 퇴근 후에 이것저것 공부를 하다 보니 아파트까지 사게 되었네요.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으로는 피눈물 주룩주룩. 언니 저 잘렸어요)”


2021년 9월 30일.

나는 다니던 직장을 잃고, 서울 아파트를 얻었다.

왓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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