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려운 SNS
저는 인스타그램을 볼 때마다 아주 큰 마음의 짐이 있습니다. 저는 자주 올리는 편도 아니라 게시물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1년에 하나를 올리기도 할 정도로 발행 주기도 고무줄 같고, 언젠가는 토로하는 일기장처럼 썼다가 주간 사진 앨범처럼 아카이빙 용도로 쓰기도 하고요. 그나마 몇 개 없는 피드만 보더라도 혼란스러운 나 자신이 그대로 드러난 것만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새 게시글을 쓰기 위해 빈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사진만 고르다가 접은 적도 수십 번 일 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혹은 해도 될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올리지 못하고 임시저장으로 남은 수많은 게시물들을 보며 깊은 자책에 빠지곤 합니다. '역시 난 안 되겠어...'
그러다가 힌트를 얻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쉽게 단순하게 잘 활용하는 브랜드들을 엿보면서요. 최근에 인상 깊었던 브랜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바로 베리시입니다. 혹시라도 언더웨어 광고라도 한번 클릭하면 광고면에 가장 수시로 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집요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베리시가 인스타그램을 3개나 운영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오피셜, 언오피셜 그리고 담당자 계정까지요! 평소 관심 있던 브랜드에서 오피셜과 언오피셜 계정 등 2개까지 나누는 것은 보았는데, 3개까지 쪼개다니요. 보통은 하나의 인스타그램도 잘 활용하지 못해서 고민인 저 같은 사람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베리시는 모두 같은 비중으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베리시의 인스타그램에는 모두 다른 목표가 있고, 다른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오피셜 계정은 룩북처럼, 언오피셜 계정은 실착 리뷰처럼, 담당자 계정은 말 많은 언니처럼 운영합니다. 어떤 계정은 할인율도 숨기지만, 어떤 계정은 주구장창 릴스만 올리기도 합니다. 당연히 각 계정의 게시물의 수도, 업로드 주기도, 퀄리티도 다릅니다. 인스타그램을 이렇게 생산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인상을 받는 브랜드는 오랜만이었습니다. 제게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도 바로 이것이었어요. 똑같은 힘으로 모든 게시물에 힘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 나의 페르소나를 명확히 정의하고, 내가 닿고 싶은 이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를, 중요도에 따라 나누고, 그에 걸맞은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 이것이 제겐 인스타그램을 오래, 잘할 수 있는 힌트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커피챗에서 인스타그램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활용하지도 못하는데 자신의 일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지 묻는 친구가 있었어요. 누군가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그 일을 하는 목적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남들이 다 하니까 억지로 시작한다면 결코 계속할 수 없다.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 좁은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터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서 유튜브에 가야 했다. 그곳은 다른 세계고, 전쟁터였다. 그런 마음으로 뛰어든다면 승산이 없다.’ 인스타그램은 나의 일을 소리쳐 주고 알려 줄 좋은 포트폴리오가 됩니다. 게시물의 퀄리티로 평가받는 곳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 아카이빙 되는 곳이죠. 그러니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올릴 수밖에 없는 나만의 이유를 날카롭게 벼리고 깎아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저를 상상해 봅니다.
브런치도, 인스타그램도 작년보다는 올해 더 잘 운영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내년엔 ‘나, 인스타그램 어쩌면 쉬웠을지도?’라고 허풍 칠 수 있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