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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Dec 05. 2021

잊을 수 없는 첫 책, 언컨택트

2019년 11월 말 마지막 직장인 북이십일을 그만두었다. 1년 4개월 만이었다. 많이 배우고 깨닫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하며 보냈던 시간들.

각종 업무와 회의, 미팅 기록은 일곱권의 노트로 남았다. 특히 30년간 회사의 모든 시스템을 구축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열정적으로 일하시던 사장님의 말씀은 가장 큰 노트에 별도로 정리해두었다. 출판의 미래에 대해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30년간 해온 출판일을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 초반, 창업을 하기에 늦은 나이인가 잠시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출판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재밌고 행복해져서 작은 한 걸음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출판사를 운영하기 위한 행정적인 절차를 밟고, 로고 디자인은 예전에 함께 일했던 후배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홍대와 합정을 수십번 오가며 사무실을 알아보다 홍대입구 사거리에 있는 서교타워로 정했다. 14층이어서 뷰가 참 좋았다.

로고가 완성되어 명함이 나왔을 때 코로나 초기여서 대면 미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저자와 어떤 책을 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여서 고민이 많았었는데 뭔가 새롭게 다르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몇몇 저자분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온라인으로 명함을 보내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명함을 보낸 첫 번째 저자가 김용섭 소장님이다. 소장님은 창업 축하와 응원의 말씀과 함께 집필중인 원고가 있다고 하셨다. 다만 미리 이야기해둔 출판사가 있어서 어느 정도 완성된 후 동시에 메일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일주일 후 소장님께 원고를 받았고, 받는 순간 "이 책은 무조건 팔린다"는 느낌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원고를 읽고 바로 출판하고 싶다는 연락을 보냈다. 출간 타이밍이 매우 중요했던 책이어서 최대한 빨리 작업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2020년 베스트셀러 <언컨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장님께 최종 원고를 받은 날이 3월 30일, 책이 서점에 출고된 날은 4월 16일이다. 편집, 디자인 기간은 10일 정도 걸렸고, 제작기간 3일 걸렸다. 책 편집 진행은 베테랑 편집자 후배에게 맡겼고 디자인은 20년 친구인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책 편집이 진행되는 동안 책 출고를 위한 물류업체, 서점들과 계약을 진행하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책을 어떻게 팔 것인가였는데, 저자이자 유튜버로 알려진 김미경 대표님이 떠올랐다. 새로운 트렌드에 관심이 많은 김미경 대표님이 이 책을 소개해준다면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김미경 tv에 연락하고 방송 일정을 잡은 것이 4월 21일이었다. 방송 전에 책이 서점에 진열되려면 최소 4월 16일에는 배본이 되어야 했다. 방송 잡고 출간 일정을 거꾸로 계산해서 잡은 것이다.


창업 16일 만에 책을 내다니! 출판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믿고 협업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첫 책을 만드는 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느꼈다. 기다렸다는 듯이 원고를 주신 김용섭 소장님, 일정은 무조건 맞춰야죠 달려온 후배 편집자, 20년 지기 디자이너, 제작처 이사님....이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책 만들면서 조카의 도움도 받았었는데, 본문에 마스크 키스 사진이 있었다. 저작권을 확인해본 결과 저자분이 원고에 넣은 사진은 사진 속 인물들의 초상권 침해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결혼을 앞둔 조카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스크 쓰고 키스하는 장면 사진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했더니 바로 준비해서 보내주었다.


제본소에 달려가 첫 책을 보았을 때의 기쁨과 감사함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책을 서점에 보내려면 구매팀 담당자와 사전 미팅을 해야 한다. 1인 출판사다 보니 모든 일은 내 몫이었다. 처음 교보문고 담당자를 만났을 때 어찌나 떨었던지. 그 와중에 직원이 보인 반응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간단한 소개를 하고 책을 전했을 때 담당자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빛이 더 잘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의 상황이 모두를 불안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무렵에 비대면, 즉 '언컨 택트'라는 키워드가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코로나 이후 어떤 세상이 올지 알려주는 책으로 <언컨 택트>가 처음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담당자는 매우 친절하게 응대를 했고 500부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교보 배본은 100부가 기본이라고 들었는데 500부라니 속으로 놀랐다.


<언컨택트> 출간하자마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김미경 tv 방송이 나간 날 저녁부터 판매 속도가 붙어 2주 만에 15,000부 이상 판매가 되었다. 첫 책으로 경제경영 1위를 달성하고 주요 서점에서 종합 2위까지 올라갔다. 수많은 매체에서 '언컨택트' 관련 기사가 나왔고, 서점에서는 이 책과 관련한 다양한 홍보 계획을 제안해주었다. 위즈덤하우스나 북이십일에서 일할 때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을 지켜본 경험이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고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팔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최상의 마케팅이라는 것!

<언컨택트> 만들고 팔면서 경험한 일들은 출판을 시작한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매출 성과를 올린 덕분에 또 다른 책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생긴 것도 좋았지만, 퍼블리온은 책을 잘 만들고 파는 출판사라는 인식을 조금이나마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성과인 것 같다.


2020년 4월 1일 출판을 시작했으니 2년이 조금 안되었다. 그사이 아홉 권의 책을 더 만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책들을 만들게 될지 모르겠지만, 창업하고 만든 첫 책 <언컨택트>는 아마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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