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피라이터의 취미생활
팔자다. 이 성격은 팔자다. 여섯살 때부터 이 지경이면 팔자라는 말을 붙여도 손색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여섯 살 때 엄마는 집에서 피아노 수업을 했다. 동네에 사는 언니 오빠들이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수시로 들락거렸다.
혼자서 TV를 보고 있던 어느 오후였다. 언니 한 명이 “민철아 안녕”이라고말하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또 한 명의 언니가 “민철아 안녕”이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그때 왜 나도 뭔가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래봤자 여섯 살짜리가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인형놀이나 동화책 읽기나 낮잠밖에 없었을텐데.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니. 나도 알 수 없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러니까 말하는 거다. 이 성격은 팔자라고. 그냥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일곱 살 때 엄마는 마침내 피아노학원을 차렸다. 엄마는 찾아오는 학부모와 애들을 상대하느라 바빴고, 나 역시 나대로 바빴다.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는 학원만 8개를 다니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 중에 누군가가 서예를 배운다고 말하면 나도 배우고 싶었다. 누군가가 영어를 배운다고 말하면 나도 영어가 너무 배우고 싶었다. 친구에게 물어 그 학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나를 너무믿었고,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 딱히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늘 바빴다. 열 살인 주제에.
알아서 8개의 학원을 다니던 꼬마는 커서, 알아서 닥치는대로 언어를 배우는 대학생이 되었다. 시작은 독일어였다. 철학과였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하기 싫던 독일어, ‘미’도 겨우 받았던 그 언어를 배우기 위해 방학 때 하루 4시간씩 학원에 다녔다. 재미있었다. 더듬더듬 독일어를 읽는 재미에 빠졌을 때, 한 선배가 제안해왔다. “너 라틴어랑 희랍어 배울 생각 있어?” 라틴어와 희랍어라니! 나는 철학과인데! 그럼 당연히!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1년을 허덕이며 공부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만 뒀다. 하나의 동사가 60개로 변한다는 걸 알게 된 직후였다. 내 머리는 60개의 동사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머리가 아니었다. 내가 머리가 아무리 안 좋아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음은 일본어였다. 라틴어와 희랍어는 1년이나 배웠지만 도대체 써먹을 곳이 없었는데 일본어는? 배우는 족족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당시 좋아하던 남자애가 일본어에 열성이었다. 같이 시간을 보내려면? 당연히 같이 일본어 공부를 해야했다. 이번에는 학원도 안 다녔다. 왜?그 남자애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그래야 연애가 되니까. 처음으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결국 연애가 소멸해감에 따라 일본어에 대한열정도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욕심의 끝은 거기가 아니었다. 회사를 들어가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에 가겠다고 불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과연 이번엔 달랐다. 파리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불어공부를 한 것이 빛을 발했던 것이다. 공항 지하철 티켓 기계 앞에서 허둥지둥거리니 뒤에 기다리던 여자가 한 마디 했다.
"Vous parlez Francais? (불어 할 줄 아세요?)"
"Non! (아니요!!!!!!)"
그러자 바로 그 여자가 영어로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거기에서 찬란했던 나의 언어정복기들은 마무리되었다.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내능력은.
영어, 독일어, 라틴어, 희랍어, 일어, 불어. 사람들은 내 언어 욕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박장대소를 한다. 그리고 하나라도 기억하는 언어가 있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같다. 기억할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단어를 외우는 뇌세포가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언어에 욕심을 냈냐고? 모르겠다. 언어에 유독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그냥 배우고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 열망.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뭔가를 배울 때의 나는 확실히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즐거워하고,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기어이 짬을 내서 배우러 달려간다. 그러니 나에게 ‘배운다’라는 말은 장미빛 미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장미빛 현재를 위한 말이 된다.
어쩌면 카피라이터로 11년 째 살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인지 모르겠다. 신입사원으로 출근한 첫 날, 대표님은 말씀하셨다. “일을 하다보면 좋은 선배도 만날거고, 나쁜 선배도 만나게 될 거다. 하지만 후배의 유일한 특권은 좋은 선배의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선배의 나쁜 점은 안 배우면 된다는 거지.” 이 말을 듣는 순간, 조마조마하던내 마음의 주름살은 순식간에 펴졌다. 배우면 된다니. 그냥그러면 된다니. 그건 내가 제일 잘 하는 건데.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데.
과연 광고를 직업으로 가진다는 건 끊임없이 배우는 일이었다. 우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배워야했다. 20대 초반의 아이들을 위한 화장품 광고를 만들 때엔 회사인턴 사원을 불러다놓고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나는 30대중반 아줌마라 이런 건 잘 몰라.”라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웃도어용품광고를 만들 때엔 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을 만나서 그들을 배웠다. 나는 산에 안 가지만. 나는 아웃도어 의상들이 아무래도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어쨌거나 배웠다. 그렇게 최신 통신 서비스를 배우고, 유제품을 배우고, 커피를 배우고, 스포츠를 배웠다. 배워야 아이디어가 나오니까. 배워야 카피 한 줄이라도 제대로 쓸수 있으니까.
6살때 뭐라도 배워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 아이는 커서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배우는 걸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경험하고, 부딪히고, 배우고, 살고, 쓰는
11년차 카피라이터의 기록이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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