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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철 Jul 10. 2015

일상을 여행하다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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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

                                 -Micheal Cunningham 'THE HOURS'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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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 일상은 바람이 살랑 부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가 아닌, 한낮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회사 앞 식당의 점심 속에 있다. 그 일상은 스탠드불 하나 켜놓고 밤새워 쓰는 글이 아니라 창백한 형광등빛 아래에서 작성하는 문서안에 있고, 잘 포장된 초콜렛이 아니라 입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는 껌속에 있다.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하는 서류들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쨌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야근을 해도 아침에 일어나야만 하고, 먹고 싶지 않아도 12시만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 짬을 내어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며, 보고싶지 않은 얼굴들과 마주앉아 몇 시간이고 회의를 해야 한다. 지금 하고 싶지 않아도 '지금' 일을 해야하며,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도 지금은 '그' 일을 해야 한다. 채워지는 것과 동시에 비어버리는 월급 통장에 약간의 기대를 해야하고, 또 곧바로 실망을 해야한다. 좋아하는 술을 앞에 두고도 누군가의 지겨운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야 하고, 노래방에 끌려가서 부르기 싫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에.


그러니 나는 다른일상을 꿈꾼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아침 바게트가 일상이 되고, 노천카페가 일상이되고, 밤새워 쓰는 글이, 퐁피두 센터가, 세비야의 햇살이, 라인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가, 렘브란트의 그림이 고흐의 그림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모든 하루가 내 손에 고스란히 달려있으며 떠나고 싶을때 언제든 떠날 수있는 생활이 일상이 되길 꿈꾼다. 파리가 일상이 되길 꿈꾼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지금,이곳에, 있다.


그러니 나는 잠시 짬을 내어 마시는 커피에 한숨을 돌리고, 학원에 가는 길에서 새벽 이슬에 젖은 나무들에 감사하고, 회사 난간에 서서 저녁 노을에 먹먹해진 가슴을 느껴야 한다. 누군가가 내 아이디어가 좋다라고 말해줄때 진심으로 웃을 수 있어야 하며, 내가 쓴 글이 아니다 싶을 땐 다시 쓸 열정을 가져야만 한다. 바람의 서늘함에 옷깃을 여미며 가을을 느껴야 하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지긋지긋하지만 여름을 만끽해야만 한다. 나란히 앉아서 그 사람과 마시는 맥주에 행복을 느끼고, 그 사람의 눈빛 속에서 다시 나를 찾아, 다시 일상을 꾸려 나갈 힘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행은일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꿈꾸는 그곳은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곳에서도, 그 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매일 먹는 바게트가 지겨울테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일상의 외로움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것이 또,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無化시켜버리지 않는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것이 내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떠나려다가 떠나지 못하고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일상과 여행의 흔들림의 기록을 더 보고 싶다면


모든 요일의 기록 http://durl.me/96ki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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