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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철 Jul 23. 2015

야구 모르는 카피라이터의 야구응원가

책 <모든 요일의 기록> 중에서

한때 우리팀에서 만들었던 ‘되고송’이라는 것이 유행한적이 있다.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 못 참겠으면 그만두면되고 / 견디다 보면 또 월급날 되고’. 새벽 2시, 집에 가고 싶어서 억지로 써낸 이 카피가 특히 인기였다. ‘견디다 보면 또 월급날 되고’라는 카피를 쓰고 잠시 내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견뎠다. 견딜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이 캠페인을 만드느라 팀장님은 목디스크가 도져서 잘 걷지도 못했고, 팀 아트디렉터는 허리디스크가 도져서 잘 앉지도 못했고, 팀 카피라이터는 우울증이 도져서 회사에 나오지도 못했으니까. 팀원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캠페인은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건 불행인건가 다행인건가. 어쨌거나 캠페인이 인기를 끌자 같은 그룹의 야구팀에서 의뢰가 왔다. 되고송으로 응원가를 만들어달라는. 그것도 나에게. 어쩌자고 나에게. 야구에 대해 아는 거라곤 홈런 밖에 없는 나에게.


“정근우라는 선수 아세요?”

“아니요.” 

“그 선수 응원가를 써주셔야하는데……” 

“그 선수가 뭘 잘하는데요?” 

“도루를 잘해요.” 

“도루가 뭐예요?” 

“야구에 보면 ‘루’라는 게 있는데 그걸 훔치는 거예요.” 

“훔치는 건 나쁜 거 아니예요?” 

“아, 아니 그게……”

 

농담이 아니다. 이게 나와 AE의 실제 대화이다. 아무리 면허증도 없는 주제에 자동차 카피를 쓰는 나였지만 야구는 다른 문제였다. 대충이라도 아는 게 없었다. 그냥 다른 은하계였다. 거기서 홈런을 치든, 도루를 하든, 주자가 뛰든, 투수가 바뀌든, 연패를 하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어떤 팀이 있는지도 몰랐고, 어떤 선수가 있는지도 몰랐다. ‘투수’라고 누군가 말하면 머리 속으로 ‘던질 투’를 중얼거린 이후에야 “아, 야구공던지는 사람?”이라고 답을 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타자’라고 말하면 머리 속으로 ‘때릴 타’라고 중얼거려야만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런 나에게 야구응원가라니. 어쩌자고 나에게. 다들 아파서 회사에 못 나오고 있었으니, 대신 써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검색을 십분 활용해서 겨우겨우 꾸역꾸역 응원가 가사를 썼다. 그게 맞는 이야기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야구의 충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나를 찾아왔다. 2008년 올림픽. 한국 야구가  결승전에 올랐다고 방송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난리였다. 그래서 나도 TV를 틀었다. 틀어놓고 딴 짓을 했다. 봐도 모르니까. 한참이 지난 후 쿠바 선수가 친 공을 우리나라 선수가 잡았다. 그 순간, 갑자기 우리나라 선수들 전부가 운동장으로 뛰어나왔다. 야구도 모르는 주제에 나는, ‘쯧쯧. 저렇게 경거망동하면 안 될텐데……끝까지 열심히 해야할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설거지를 계속했다. 그런데 해설자들도 소리를 질렀다. 온 동네가 환호성으로 넘쳐났다. 금메달이라고 화면에 대문짝만하게 자막이 올라왔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홈런도 안 쳤는데? 공이 담장을 넘어가야 이기는 거 아니야? 


다음날 팀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 나는 전날의 금메달 경기 이야기를꺼냈다.

“근데 어제, 마지막에우리나라 선수가 공을 잡으면서 경기가 끝났잖아요. 왜 그런거예요?”

“마지막에 병살을 잡았으니까, 이긴거지.”

“병살이 뭐예요?”

“쓰리아웃 중에서 투아웃을 한 번에 잡는거지.”

“아웃이 뭐예요?”

“……밥 먹자.”


보다못한 남자친구는 나를 데리고 야구장에 갔다. 야구장에서 먹는 치맥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마침내 나도 먹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4시간 동안, 남자친구는 특강을 했다. 야구는 9회까지 있으며, 스트라이크와 볼은 어떻게 다르며, 무엇을 ‘루’라 부르며, 저걸 다 밟으면 1점이 올라가며, 공을 바로 잡으면 아웃이 되고, 운동장에 떨어지면 안타가 되고, 안타는 좋은 것이고, 물론 우리가 안타를 맞으면 안 좋은 것이고, 선 밖에 떨어지는 건 안타가 아니라 파울이고, 파울은 스트라이크로 계산을 하는데, 파울을 잡으면 아웃카운트가 하나 늘어나고, 볼이 4개가 되면 걸어나가도 되는 거고, 스트라이크가 3개가 되면 벤치로 돌아가야 되는거고, 저 사람은 지금 왜 뛰는 것이며, 사람들은 왜 환호를 하는 것이며, 남자친구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물론 나는 거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고, 그래서 했던 질문을 또 하고 또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짜증 한 톨 내지 않았다. 그에겐 절호의 찬스였던 것이다. 몇 번만 인내심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평생 나와 같이 야구를 같이 볼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는 나와 연애한 이후로 그 좋아하는야구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날, 그러니까 금메달 기념으로 야구장에 공짜로 입장할 수 있었던 바로 그날, 내가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던 그날, 모든 ‘루’ 위에 선수들이 섰다. 남자친구가 알려줬다. ‘만루’라고. 그리고 며칠 전 올림픽에서 마지막으로 ‘병살’을 잡은 선수가 등장했다. 그리고, 쳤다. 넘어갔다. 처음 내 눈으로 만루홈런이라는 것을 보는 순간이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그 순간처럼, 경기장이 요동을 쳤다. 단숨에 4점이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그 선수를 좋아하기로. 3점 슛을 잘 넣는다는 이유로 문경은 선수를 좋아했고, 슬램덩크의 정대만을 좋아한 나로서는 매우 논리적인 결론이었다. 농구에 3점슛이 있다면 야구엔 만루홈런이 있었으니까. 몸싸움도 없이 멀리서 우아하게 3점 슛을 넣는 것처럼, 만루홈런을 친 다음에는 열심히 뛰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천천히, 모든 함성을 만끽하면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면 되는 거였다. 만루홈런에 반한 나는, 경기장 치맥에 반한 나는, 그 후로 종종 야구장에 갔다. 꼭 야구장에 가지 않더라도 저녁이면 남자친구와 함께 야구를 봤다. 물론 치맥과 함께. 그리고 나는 야구의 팬이 되어버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자친구와 같이 야구를 보는 그 시간의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봄을 기다린다. 그럼 야구팬인가? 모르겠다. 가을에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이 야구를 못하면 욕이 나온다. 그럼 야구 팬인가? 그럴지도. 솔직히 열심히 보지는 않는다. 본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보더라도 다음 날이면 까먹는다. 일희일비하며 술을 마시고, 핏대 높여 응원을 해도 이듬 해가 되기도 전에 그 모든 경기는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럼 야구팬인가? 아닐지도.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있다. 거의 유일하게 챙겨보는 스포츠가 야구라서 좋다. 야구가 일주일에 6일이나 하는 스포츠라서 좋다. 야구를 열심히 보는 남편 옆에서 뜨개질하고, 맥주를 마시고, 게임을 하고, 잡담을 하고, 그러다 또 야구를 보고, 응원을 하고, 또 딴 짓을 하는 그 시간이 좋다. 둘이서 나란히 앉아 누군가를 응원하는 시간이 좋다. 그럼 나는 야구팬인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11년차 카피라이터의 좌충우돌 생활기가 더 궁금하다면

책 '모든 요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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