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장난을 군대에서 감행하다.
자대 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후임이 들어왔을 때 일이다. 나 같은 신병에게도 후임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쁜 것도 잠시, 그는 배치받자마자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훈련소에서 지급받는 군용 운동화(군대에서는 '활동화'라고 한다)에 그린 체스판 모양 낙서가 문제였다. 중대의 모든 선임들이 그의 활동화를 안 좋게 보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군대란 고작 활동화에 그린 낙서 때문에도 엄청난 욕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첫 후임의 평판에 금이 가는 것이 싫었다. 그의 안정적인 적응을 위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낙서는 유성매직으로 인조가죽에 그려져 있었다. 나는 가죽 깊이 스며들어있을 무늬를 지울 방법을 고민하다가 예초기를 청소할 때 쓰던 휘발유를 떠올렸다. '기름은 기름으로 지우면 될 것이다.'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고, 바로 실행에 옳겼다. 나는 그때 예초병 막내로서의 생활을 막 시작했기 때문에 휘발유의 위치와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후임의 운동화를 받아 들고 행정반에서 창고 키를 받아 홀로 창고로 갔다. 저녁을 먹고 청소시간이 되기 전 샤워시간이었다. 막사 전체 인원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예초기를 닦을 때처럼 휘발유를 꺼내 태양초 고추장통에 조금 옮겨 담고 플라스틱 솔을 꺼냈다. 그리고 솔에 조금씩 휘발유를 묻혀서 운동화를 닦기 시작했다. 그 체스판 무늬는 신발의 앞코 부분에 그려져 있었다. 처음 예상한 시간은 작업시간은 10분 정도였다. 10분 동안 솔질은 반복되었지만 무늬는 조금 번지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다 선임들이 전투화에 광을 낼 때 구두약을 묻혀놓고 불을 붙이는 모습을 기억해 냈다. 잠깐의 열처리가 지나고 나면 무늬는 깨끗하게 사라져 있을 것이다.
1차원적인 뇌를 가진 인간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검증하지 않고 실행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라이터를 꺼내 활동화에 불을 붙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휘발유는 구두약과 달리 발화성이 크다. 그리고 나는 그 자명한 사실을 망각했다. 갑자기 확 올라오는 불꽃에 놀라 나는 그만 활동화를 놓쳐버렸다. 활동화는 고추장통에 명중했고 고추장 통에 담겨있던 기름이 쏟아졌다. 활동화에 붙어있던 불은 순식간에 쏟아진 기름을 따라붙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불길의 끝자락에 엔진오일과 휘발유를 섞을 때 쓰는 1L 용량의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마침 그 통에는 엔진오일과 25:1의 비율로 잘 배합된 휘발유가 가득 차있었다. 불은 플라스틱 통을 눈 깜짝할 사이에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휘발유가 터져 나오는 순간 불길은 천장까지 치솟았다.
이제껏 나는 그 정도의 불장난을 해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하얘지고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잠깐 사이에 불을 퇴로를 차단하고, 당황한 나를 비웃듯이 이미 내 키의 절반은 되는 높이로 타고 있었다.
점점 공기는 매캐해졌다. 처음부터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들어와 있었지만, 불의 높이가 생각보다 높았다. 나는 이대로 있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즉시 주변을 살폈다. 내 바로 옆에 군용 텐트가 접혀 있었다. 나는 텐트를 밟고 있는 힘껏 도약해 불을 뛰어넘었다.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나는 더 끔찍한 장면을 마주해야 했다. 전 막사에 화재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까마득한 선임들(나는 부대에서 막내였으므로. 나와 내 후임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제각기 양동이나 소화기, 불 끄는 분무 기구를 들고 창고로 뛰어오는 모습을. 내가 불을 낸 창고의 위치는 높아서 밖으로 나오면 막사의 뒤편이 한눈에 보였다. 즉 나는 그 모든 장면을 가장 좋은 자리에서 라이브로 지켜볼 수 있었다. 몸이 얼어붙었다. 내 바로 뒤에서 무서운 기세로 타고 있는 화염보다 앞으로 부대에서 생활해야 할 2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부대에 온 지 40일이 안되었던 신병에게 그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다.
불은 금방 진화되었지만 남은 불씨는 끊임없이 내 애간장을 태웠다. 먼저, 나에게 창고 키를 전달해 주었던 선임이 나 대신 강도 높은 문책을 받았으며, 내가 생활하던 내무실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돌아가며 내가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지 밀착 감시해야 했다. 휘발유를 가장 많이 만져야 하는 예초병임에도 두 달 동안은 휘발유 근처에 갈 수 없었다.
사건 직후 나는 대대장에게 불려 가 휴가를 딱 하루 잘렸다. 이등병이라서 가능한 특혜였다. 만약 상 병장급이었다면 영창을 네 번, 아니 다섯 번 정도 끌려가도 시원찮을 일이었다. 오히려 당사자인 내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압박감으로 느껴져 세네 달 동안 대인기피증에 걸린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창고에서 일어났던 화재사건은 사람들의 입에 몇 번 오르내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혔다. 다만 나는 잊을 수 없었는데, 활동화를 나에게 맡겼던 후임이 제대할 때까지 나에게 자신의 활동화를 돌려달라며 놀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머쓱한 말투로 그가 내 덕에 새 활동화를 보급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사건 이후 후임의 활동화는 전소되었으므로, 새 활동화를 보급받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얘깃거리가 생겼다며. 엄마는 얘기를 듣는 내내 가슴을 쓸어내리시고는,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고. 하며 이마를 짚으셨다. 나는 큰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살아있으니 된 거라고. 말하며 엄마 속도 모르고 한바탕 웃다가 정수리에 꿀밤을 먹곤 했다. 미안 엄마, 그 이후론 그런 일 없었잖아? 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