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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Jan 12. 2019

너를 걷는다

너는 나에게 생소한 장소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걷는다. 바쁘지 않은 발걸음으로 둘러본다. 수많은 질문이 담긴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눈을 돌리며 마치 여행자처럼 너를 거닌다. 


물론 벌써 너를 오랫동안 둘러보았다. 인간은 오랫동안 둘러본 곳을 잘 안다고 여긴다. 좌측으로 가면 무엇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안다고 말한다. 그렇게 너의 모습을 알았다고 느끼는 찰나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들을 다시 발견한다. 오랫동안 자라온 동네에서 처음 보는 것을 발견한 기분처럼. 익숙함 그릇에 담긴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너는 새로워진다.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을까. 생전 처음 듣는 단어의 조합과 어투,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어찌 익숙하다 말할 수 있을까. 네 앞에 나는 그저 외국의 어느 거리에 던져진 여행자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전부 담아내려는 복잡한 눈빛을 띈 철저한 이방인이다. 우주의 행성처럼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할 네 머릿속을 탐방하는 어리숙한 여행자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걷는다. 그저 너의 입술과 이야기를 따라 걷는다. 머리칼의 부드러움과 손가락 마디의 굴곡을 따라 걷는다. 발바닥에 닿는 느낌을 통해 이 아름다운 곳의 생김새를 본다. 언제쯤이면 너의 모습을 알 수 있을까?. 이 생소함 마저 익숙해지면 비로소 나는 너의 모습을 알 수 있을까?. 나는 두서없는 질문들을 챙겨 넣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배낭을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들처맨다. 단 하나도 놓치지 않을 때까지. 적어도 이번 삶 안에 너를 이해하려면 몇 번이고 그래야 한다고 다짐하며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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