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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Jan 12. 2019

온면

어릴 적부터 엄마는 온면을 자주 해주셨다. 다싯물에 휘휘 달걀을 풀고 야채를 썰어 넣고 간을 한 뒤, 삶은 소면을 넣어 양념간장을 곁들여 주셨는데, 주로 아침 메뉴로 올라왔던 요리였다. 참기름 향이 감도는 짭조름한 양념간장과 다싯물의 조화는 그 어떤 조미료도 이길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엄마 음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가 널 까다롭게 키웠는데 누구 탓을 하겠냐며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우연히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엄마는 맛을 보더니 갸웃거리며 다시 간을 하고 맛보길 한참 동안 반복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투정을 부린 걸까.


어느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잠이 덜 깬 채로 비틀비틀 주방으로 나왔다. 냄비에 재료가 열댓가지는 들어간 다싯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아침 메뉴를 물으니 엄마는 북엇국을 끓일 거라고 했다. 나는 다싯물을 보니 엄마표 온면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엄마의 표정이 밝아진다. 엄마는 흔쾌히 메뉴를 온면으로 바꾸었다. 


엄마가 야채를 썰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엄마는 오랜만에 즐거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참기름이 들어간 양념간장을 만들고 소면을 삶고 찬물에 박박 씻어 그릇에 주먹만 하게 말아놓았다. 


육수를 면 위로 천천히 부었다. 마치 과거를 불러내는 의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남은 건더기는 숟가락으로 건져 얹어놓았다. 양념간장을 올려 대충 휘저은 뒤 한 젓가락 크게 떠 후루룩. 아, 그때 그 맛이다. 엄마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건 팔아도 되겠다고. 너무너무 맛있다고, 이 멋진 요리를 내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고. 

 엄마는 옛날 그 모습으로 환하게 웃어주셨다. 다행이다. 엄마가 아직 많이 늙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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