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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즈 Dec 25. 2017

프랑스의 평화로운 섬 일덱스

J'adore, île d'aix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생에 첫번째 해외출국. 거기에 1년 거주까지.

지레 겁먹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외로움'. 어떤 상황이라도 내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장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파리로 떠나기전 밤낮으로 인터넷 서칭을 했고 그 때 발견한 것이 바로 워크캠프(work camp)였다. 봉사활동이라는 좋은 틀 안에서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고 더불어 언어도 쑥쑥 늘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바로 신청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달려온 탓에 많이 지쳐있었고, 작은 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꿈이었다. 마침 딱 내가 원하는 날짜에 섬 봉사활동이 있었으며 아주 좋은 후기도 있었기에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저 가방 하나가 내가 가진 모든 것.

그리고 도착한 일덱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자며 벤치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30분도 안되어 너무 추워서 후회하고 말았다. 카페까지 찾아가기엔 시간도 애매하고 가방이 돌덩어리였기 때문에 오들오들 떨며 캠프리더를 기다렸다. 가방에 있는 따뜻한 옷들은 다 껴입었지만 바닷 바람이 워낙 거세서 이미 추움의 한계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저녁쯤되어 도착한 워크캠프멤버들과 캠프리더를 만났고 차를 보고 환호했지만 차는 그저 짐을 옮기는 용도일 뿐이었다. 우리는 비까지 내리는 추운 섬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했다. 헉 하는 상황이었지만 첫인상부터 찡그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냥 웃어넘겼다. 그날부터가 시작이었는지 약 일주일 정도는 계속 비가오고 흐린 날씨가 지속되었었다. 그래서 밤에 너무 추워서 깬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캠프리더에게 요청해 이불을 하나씩 더 덮고 잤다.

 


숙소.

침대 6개에 개인 옷장 6개가 있는 큰 방에서 우리는 다함께 생활했다. 다행히 여자방 남자방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큰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남자방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기 때문..) 우리방에 있는 프랑스식 창문은 커튼이나 블라인드 방충망 같은 것이 없고 철문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아침햇살이 좋아 그것을 닫지 않고 잤다가 친구들에게 타박을 받았다. 반대편에 누운 친구들에게는 햇볕이 얼굴에 바로 비치게 되어 잠을 못잤다는 것. 나는 곧바로 사과하고 그 다음부터는 창문 닫는 것에 꼭꼭 신경을 썼다.



첫만남.

첫째날에는 클레어와 프레디 (캠프리더)가 준비한 다양한 웰컴푸드들과 함께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좋았던 것은 짝을 바꿔가며 정해진 시간동안만 이야기 하는 스피트토킹 타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묻고 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리더에게 바라는 점, 캠프에 기대하는 점과 두려운점에 관해 각각 포스트잇을 써 붙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의 나는 아직 영어를 낯설어하고 있었기에 기대와 두려움을 거꾸로 적어서 냈었다.. 그 후에는 청소팀 요리팀을 어떻게 돌아가면서 할지 상의를 했다. 한국이었으면 우리가 표를 저렇게 만들어왔으니 제비뽑기를 합시다 라고 했을 법한 상황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이야기 하자고 했다. 그리고 한참동안의 토론이 이어졌다.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일지에 대하여. 그리고 처음 표에 적힌대로 3가지 팀이 아닌 쿠킹팀과 클리닝팀 두팀으로 나뉘어졌다. 우리의 3주간의 스케쥴표는 처음엔 빈공간이 가득했지만 나중엔 위 이미지처럼 가득차게 되었다.



봉사활동.

명색이 워크캠프이니 만큼 우리는 무려 주 5일 일을 했다. 아침 8시15분에 일을 시작해서 중간에 브레이크타임을 한번 거치고 1시까지 일을 했다. 우리의 워킹플레이스는 두곳이었는데 두곳에서다 무성한 풀들을 제거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Fort Liédot 에서는 원래있던 시멘트를 긁어내고 다시 바르는 일, 맨 위의 돌들을 교체하는 활동을 했다. 시멘트는 가루가 엄청나서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고, 일이 끝나고 나서는 항상 머리가 새하예저있었다. 돌을 교체하는 건.. 육체노동의 끝판왕이었다. 옛날 군사기지이니 당연히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몇십키로에 달하는 시멘트 돌 덩어리 수십개를 우리는 밧줄로 당기고 끌며 옮겨야했다.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 다하고 나니 뿌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워크캠프 오기전에는 간신히 들었던 짐가방을 워크캠프가 끝나고 나갈때에는 아주 가뿐하게 들었다. 매일 꾸준한 운동의 효과인듯하다.



각국의 음식들.

첫 주를 제외하고는 그날그날의 쿠킹팀이 요리를 10명분의 요리를 만들어서 먹었다. 일덱스에는 매일매일 빵을 제공해주는 빵집이 있었지만 마트는 너무 작기도 하고 비싸서 필요한 재료들을 배편으로 주문해서 받아오곤 했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 덕분에 매일매일 신기하고 맛있는 두둑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바게트의 매력을 알게되었다. 처음에는 프랑스 빵으로 유명하다면서 왜 맨날 바게트만 먹을까 생각했었는데 이 캠프가 끝날 쯤에는 '빵은 바게트지' 로 바뀌었다. 모든 음식에 찰떡같이 잘 어울리기 때문.

또 캠프기간동안 여러번의 파티가 있었기 때문에 각국의 요리를 대접하기도 했었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다 시킬 수 있는 시대라곤 하지만 여긴 프랑스이고 수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재료는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이었다. 파리에서 라면을 사왔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간장 된장 등등이 들어가지 않는 한국 전통음식을 찾기 어려워하던 찰나. 식당에서 간장을 발견하고 무척 기뻐했었다. 그래서 애호박전과 계란간장밥을 만들었는데 알고보니 간장이 단맛이 많이 나는 것이어서 한국의 맛은 못 따라 갔다.. 다행이 많은 사람들이 애호박전을 좋아해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날 내가 쿠킹팀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예 해산물로 국물을 내어 해물수제비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수제비 만들다가 실패했는데 여기에서는 다행이 성공해서 모두들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양한 활동.

자전거로 한두시간이면 섬 한바퀴를 다 돌 수 있을 만큼 작디작은 섬이지만 우리는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다. 비오고 강풍 부는 날에 피크닉을 갔었고, 섬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pappy jean의 집에가서 그의 일생 스토리를 듣고 오기도 했으며, 초등학교에 가서 일일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터넷도 프린터도 없는 이 섬에서 우리의 인터네셔널 디너를 홍보하기 위해 직접 그림을 그려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고, 소나 돼지가 아닌 물고기로 가죽을 만드는 아틀리에에 방문하여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가까운 항구에서 진행하는 수상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고 다함께 라로셸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또 해변에 가서 직접 굴을 채취하여 먹기도 했다.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활동들에는 거의 대부분 섬 사람들이 함께 했고, 우리가 이 섬을 떠날 쯔음에는 너무 정이 들어버려 눈물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들.

원래 사는 주민들 자체가 몇명 되지않는 곳이기 때문에 이 곳에는 오염이라는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딱히 크게 볼 거리가 없는 것도 사실. 그래서 인지 주요 관광객들은 50~60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봉사활동이 아닌 여행으로 왔었더라도 충분히 좋아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포장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섬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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