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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Oct 28. 2024

이기지 못한 게, 졌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에? 이게 뭐여? 오옹?(백종원)” SNS를 강타하며 온갖 패러디를 창발 중인, 아마도 올해의 밈(meme)으로 기억될,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한 장면이다. 흑수저 요리사 80명이 백수저로 지칭된 스타셰프 20인에게 도전하는 구도를 내세운 ‘흑백요리사’는 부제에서부터 대놓고 계급을 화두로 던진 프로그램. 초반엔 의문이 들었다. 계급 안에서 정당한 경쟁이라는 게 가능할까? 가뜩이나 ‘공정’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된 시대. 제작진에게 공정성 확보는 프로그램 생존을 위한 미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게 뭐여?”를 탄생시킨 2차전 블라인드 테스트가 이때 치트키로 차려졌다. 공정을 위해 제작진은 백종원 안성재 두 심사위원의 눈을 안대로 가려 버렸다. 플레이팅만 봐도 누구의 요리인지 짐작할 수 있으니, 편견이 끼어들 여지를 애초에 차단해 버리자는 발상이었다. 제작진은 운도 좋지. 예기치 않게 슬랩스틱을 연출한 심사위원들의 온몸 아끼지 않은 리액션은 ‘흑백요리사’가 시청자를 유입하는 데 지대한 힘을 발휘했다. 참가자를 평가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는 역설적으로 심사위원의 역량을 시청자가 평가·검증하는 무대로도 기능했다. 보지 않고도 요리 재료 등을 잡아채는 모습 등을 통해 두 심사위원은 권위를 확보했다. 초반 확보된 이러한 권위가 추후 이어진 대결에 무게를 더했음은 물론이다.


백종원 안성재가 완전 다른 종류의 셰프임을 천명한 것도 이 미션에서였다. 그들은 의견 차를 두고 여러 번 팽팽하게 맞섰는데, 자칫 요리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릴 수 있었던 이러한 극과 극 심사평에 시청자들이 납득될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경험에서 쌓아 올린 각자의 확고한 평가 기준이 있어서였다. 기준은 있되 편견은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음식에 담긴 의도를 집요하게 물으며 요리사가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까지 읽어내려 한 안성재의 평가에서는, 자신의 미각이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심사위원으로서의 ‘자기 의심’이 곁들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잘하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해 보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도전자들의 면면이 합세했다. 이때부터 이 프로그램은, 승패 너머의 지점으로 도약했다. 이겼다는 것이 꼭 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반드시 졌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는 걸 보여줘서다. 나는 이 프로그램의 진짜 성과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가 결과보다 과정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도.


다시 ‘평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을 보여주곤 하지만, 그 사회를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세계 톱 클래스 바이올리니스트가 한국 입시생으로 위장해 몰래 연주했을 때 교수님들 반응’이라는 이름의 영상이 올라왔다. 여기서 톱 바이올리니스트는 개성 강한 연주로 유명한 레이 첸. 그가 한국 입시생으로 위장, 대학교수 3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은 것이다. 속임수를 위해 첫 번째 연주를 일부러 망친 레이 첸은 두 번째부터 슬슬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날아든 건 연이은 혹평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다. “입시라는 게 보편적인 기준에서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에…(중략) 크면서는 좀 더 개성 있는 연주가 중요할 수 있겠지만, 입시 때는 많은 선생님 입맛에 맞는 연주를 하는 것도 좀 필요하다고 봐요.”


해당 영상은 ‘흑백요리사’와 (다른 의미를 지닌) 같은 결론으로 수렴된다. 우리나라 입시에선 합격했다는 것이 꼭 우수한 걸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불합격이 반드시 능력 없음을 뜻하진 않는다는 걸. ‘흑백요리사’가 드문 예일 뿐, 현실에서의 대다수 평가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음악이든 산업이든 과학이든 잠재력을 발휘하기보다, 정해진 입맛에 따르는 게 ‘생존하셨습니다’ 소릴 듣는 데 더 유리하니까. 그러고 보니, 아시아 여성 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2016년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를 담당하는 이들 입맛에는 블랙리스트였다.


('세계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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