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옷을 벗어 던지고 울부짖으며 거리를 달리는 네이팜탄 소녀의 사진. 베트남 출신 AP통신 사진기자인 닉 우트가 1972년 찍은 이 사진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며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터키 해변으로 밀려온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의 주검이 담긴 터키 도안통신 닐류페르 데미르의 사진 역시 전 세계인의 마음에 커다란 충격을 남기며,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카메라에 담긴 기록은 때론 이렇게 역사를 바꾼다. 세상을 뒤흔든다. 시선을 돌리게 한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을 보면서 카메라의 힘에 대해, 기록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하지 않을 것.” 2022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한 말이다. 정말 그럴까. 푸틴의 말과 달리,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날아든 영상은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축구를 하던 소년이 폭격으로 졸지에 다리를 잃었다. 골반뼈가 으스러진 임신부가 들것에 실려갔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렇게 일상은 무너져 내렸다. 도시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러시아의 입막음 속에 묻힐 뻔한 마리우폴의 참상이 알려진 건 AP통신 기자들에 의해서였다. 러시아의 공습이 시작된 개전 초, 외신기자 대다수가 안전을 위해 도시에서 철수할 때 AP통신 영상기자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과 프로듀서 바실리사 스테파넨코, 사진기자 에우게니이 말로레카는 마리우폴에 남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었다. 처참하게 부서지는 도시를 기록하기 위해.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당시의 기록을 94분으로 압축한 다큐멘터리다. 2022년 2월24일부터 취재팀이 마리우폴을 탈출한 3월15일까지의 20일이 담겼다. 다큐의 본령 중 하나가 진실 폭로에 있다면,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그에 꼭 들어맞는 작품이다.
미래를 바꿀지도 모를 진실
94분짜리 영상엔 감독 체르노우의 내레이션이 낮게 깔린다. “고통스러울 겁니다. 지켜보기 고통스러울 광경이죠. 하지만 보기 고통스러워야만 합니다.” 그 자신도 우크라이나 출신인 체르노우에겐 카메라가 총보다 강력한 무기였을 것이다. 자기만의 무기를 들고 그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다. 안타까운 죽음들을 집요하게 바라보기를 놓지 않는다. 그가 목숨을 담보로 역사의 목격자이길 자처한 건, 그것이 미래를 바꿀지 모를 ‘진실’이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무엇을 취재하고,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댈 것인가. 저널리즘이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세상에 내놓는 데는 무수한 ‘선택’과 ‘탐문’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언제 어디로 폭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쟁의 한가운데, 그것도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속에서 저널리즘의 정신을 이어가려면 선택이나 탐문과 끈기 외에도 필요한 게 있다. ‘의지’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기자들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세상에 나오기 힘든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카메라에 현실을 담는 것도 험난했지만 찍은 영상을 외부에 전달하는 것도 그들에겐 만만치 않았다. 통신시설 붕괴로 인터넷 신호가 잡히는 포인트가 하나둘 사라진 탓이다. 처음, 기자들은 인터넷 신호가 잡히는 쇼핑몰 인근에서 하루에 한 번씩 영상을 송고했다. 쇼핑몰 인터넷이 끊기자 위성전화기가 터지는 곳을 찾아 이동하고 또 이동했다. 그마저 불가능해지자, 취재팀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들통나면 목숨이 위태로운 하드디스크를 생리대에, 자동차 밑에 숨겨 러시아 관문소 15곳을 통과했다. 정확히 말하면 죽음의 문인지 모를 15개의 벽을 넘고 또 넘은 셈이다.
처참한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들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탄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응시하는 카메라라면 반감이 들 것이다. 실제로 체르노우와 취재진은 시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한다. ‘기레기’ 소리도 듣는다. 그러나 취재진이 두려워한 건, 미움받는 게 아니었다. 그건 진실이 가려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지키려 한 건 체면치레가 아니었다. 기자로서의 사명감이었다. 질문하고 기록하는 것. 반전 다큐로 기능하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이처럼 기자 정신을 숙고하게 한다.
그리고 그 기자 정신으로 취재한 기록(특히 임신부가 피를 흘리며 대피하는 사진)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고조시키는 데 큰 기름이 됐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임신부 사진을 두고 ‘서구 언론이 재연 배우들을 기용해 제작한 가짜 영상’이라고 주장했다. 진실을 매도하고, 왜곡했다.
기시감이 든다. 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허무맹랑한 논리로 진실을 흐리는 이들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군 개입’이라 주장하는 이들에겐 영화 <택시 운전사>의 실존 인물이자, 광주의 비극을 사진으로 세상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도 ‘북한의 선전 요원’일 뿐이다. 가짜뉴스가 점점 더 판치는 세상 속에서 저널리즘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이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마리우풀에서의 20일>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작품은 시리아 내전의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마에게>(2020)다. 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시위가 도화선이 돼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 그것은, 중동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운동인 ‘아랍의 봄’의 연장이었다.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의 대학생이었던 감독 와드는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현실에 눈을 뜬다. 저널리스트를 꿈꾼 그는 체르노우가 그랬듯,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 전쟁 한복판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무려 5년, 500시간 분량이 카메라에 담겼다. <사마에게>는 이를 95분으로 압축한 다큐멘터리다.
비극 속에서도 삶은 지속됐다. 와드는 내전 중 알레포에 몇 남지 않은 의사 함자와 결혼한다. 영화 제목에도 등장하는 ‘사마’는 두 사람이 전쟁 한가운데에서 낳은 아이다. ‘하늘’이라는 뜻의 사마.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달리, 알레포의 하늘에는 매일 불길과 연기가 피어오른다. 별똥별 대신 강철비(Steel Rain)가 비처럼 쏟아지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현실이다. 낮은 탄식과 고이는 눈물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영화가 있는데, <사마에게>가 그렇다.
정부군의 폭격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어른, 아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의료시설과 구호시설이 파괴됐고, 생과 사의 경계를 사람들이 매일 넘었다. 그 속에서도 와드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기록하는 것, 진실을 알리는 것. 그것이 사마에게 줄 수 있는, 조금 더 나은 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마리우풀에서의 20일>과 <사마에게>는 전쟁의 비극을 내밀하게 쓴 ‘혈서’이자, 아픈 역사에 대한 ‘증거’이고, 죽어간 이들의 슬픈 ‘유서’인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되는 ‘기록’이다. 둘 모두 끝나지 않은 비극을 그렸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의 다큐이기도 하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이라는 변수를 만난 우리 입장에서도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목격하길. 진실을.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