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이 지면에 ‘반셀프 인테리어’(이하 ‘반셀’)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땐 몰랐다. 반셀이 이토록 고독한 작업인 줄. 반셀을 하는 데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는 아마도 ‘돈’일 것이다. 업체에 시공 전권을 일임해서 진행하는 ‘턴키(Turn-key)’엔 현장 반장 인건비뿐 아니라 디자인비 등이 추가로 든다. 그에 반해 내가 직접 현장을 감독하는 반셀은? 거칠게 비유하면, ‘소매상’을 거치지 않고 ‘도매’로 직접 작업자와 거래하는 것이니 중간 마진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대가 없는 게 있나. 돈을 아끼는 대신 내줘야 할 게 있다. 내 시간과 손품과 발품이다. 목수·도배사·타일러·페인터·전기기사 등 각 공정의 작업자 섭외부터 미팅은 물론, 자재도 직접 고르고, 현장 관리도 해야 한다. 나처럼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선택 지옥’도 맛볼 수도 있다. 컬러와 사이즈를 겨우 정하고 한숨 돌리나 싶으면 시공자의 질문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질감은 어떤 것으로?”
반셀에서 중요한 건 시공자와의 ‘소통’이다. 소통은 쌍방이어야 한다. 내가 인테리어 배경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소통의 질도 달라진다. 시공자들이 하는 말이 모두 외계어로 들린다면 애당초 반셀은 접는 게 낫다. 공부는 필수란 얘기다. 요즘은 많은 정보가 포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 있기에 글과 영상으로 인테리어를 배운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기억할 것. 드라마 ‘미생’에서 한석율이 말했듯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다.
글로 배운 사람과 현장을 뒹굴며 체득한 사람은 체급 자체가 말해 뭐해. 비교 불가다. 아무리 벼락치기로 날밤 새우며 공부해 봤자, 현장을 누빈 분들에게 비빌게 못 된다. 호구 잡히지 않으려 ‘나, 이만큼 안다’고 고자세를 취했다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적당히 경각심과 신뢰감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관건이랄까.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자세를 낮추고 의견을 구하는 게 좋은 전략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나에겐 매우 유용했던 방법. 절박해 보이는 인상 탓인지 혈혈단신 반셀에 투신한 나를 긍휼히 여겨 도움을 나눠주신 작업자분들도 있었다.
물론 해맑기만 하면 문제다. 스스로가 명확하게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하면, 공사는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인테리어의 모든 공정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앞 공정이 실수하면 수습은 뒷 공정 몫이 된다. 그러니 뒷 공정을 위해서라도 원하는 바를 명확히 말해야 한다. 실제로, 목공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던 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우유부단하게 임했다가 뒤늦게 후회했다. 한쪽에서 도배를 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철수했던) 목공팀이 다시 달라붙어 보수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아, 풀칠이 들어가는 도배와 먼지를 뿜어내는 목공은 상극인데. 따흑….
겉만 봐선 모른다. 집도 그러하다. 가견적은 말 그대로 가견적일 뿐. 집을 뜯고 속살을 들여다보면 예기치 않은 곳에 돈 쓸 일이 생긴다. 나는 첫 공정인 철거에서부터 훌쩍 뛴 비용에 ‘현타’를 맞았다. 줄줄 누수 나는 통장 잔액에 울부짖었다. 추가 비용은 ‘나의 변덕’에서 오기도 했다. 일부 벽면을 도배 대신 타일로 바꾸면서 타일러를 한번 더 불러야 했는데, 부른다는 건 뭐다? 다, 돈(일당)이다. 현관 타일 작업 때 한번에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을. 갈대보다 쉽게 픽픽 쓰러지는 변덕으로 인해 몇십만 원이 추가로 들었다. 이런 걸 ‘멍청비용’이라고 부른다지.
회사 업무를 병행하며 반셀이 가능할까. 고도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탑재한 사람이라도 힘들긴 할 게다. 내 경우엔 출퇴근 없는 프리랜서라 유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글이라는 걸 써야 입에 풀칠하는 사람으로서 원고를 마감하며 현장도 챙기는 게 여러모로 힘에 부쳤다. 집 근처에서 글 쓰다가, 호출이 오면 달려가고, 몇 자 쓰다가, 달려가고…. 글이라는 게 진득하게 써야 가속도가 붙는 법인데, 속도가 붙을 만하면 인테리어가 걸리니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삶에서 중대한 사건은 사연을 남기고, 사연은 또 이렇게 글감이 된다. 이 죽일 놈의 직업병.
(세계일보에 쓴 '삶과문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