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여성들을 지원하는 조례가 경기도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이제 4월 29일 본회의 통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평택은 미군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기지촌여성에 관한 이야기도 예사롭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내 이웃의 일이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아픈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기지촌여성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노인이 된, 그래서 기지촌여성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이모나 할머니 내지는 어르신으로 불러야 할 그분은 처음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분들이 과거를 드러내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듣고 갔지만 실제로 말문이 트이기 까지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먹고 살기 위해 선택했던 일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나이, 수많은 선택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이십대 젊은 나이에 기지촌은 삶이 되어 발목을 잡았습니다. 기지촌에서 번 돈은 모두 가족을 위해 쓰였지만 가족들은 창피하다는 이유로 그분을 외면했습니다. 갈 곳이 사라져 눌러 앉은 기지촌에서 그 상처들은 가슴에 한이 되어 켜켜이 쌓였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꽃을 피우려면 주변 모든 것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토양도 맞아야 하고, 비도 적당히 내려야 하고, 적당한 바람도 필요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사람도 성장해서 사회에 나아가 인정받으며 살기 위해서는 좋은 환경이 필요하고, 좋은 부모와 가족이 필요하고, 어떤 형태로든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와 여건이 필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기지촌여성들은 그 모든 것들이 갖춰지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평생을 견디며 살았던 분들이었습니다. 시대적 환경이 그랬고, 가족들도 그분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도 그분들을 외화벌이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인권을 유린했고, 이웃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었습니다.
기지촌에서의 삶이 자의에 의해서였든 타의에 의해서였든 한 인간의 삶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칠고 힘든 시간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이제 늙고 병까지 얻은 상황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겪지 못할 수모를 온몸으로 감내하며 살았던 시간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속죄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며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인간의 굴곡진 삶에 대해 누가 당당히 돌을 던질 수 있는지, 문득 누구든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고 했던 성경의 한 구절도 생각납니다.
이번에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경기도에서 제정될 기지촌여성지원조례가 그분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국가라는 거대권력으로 행사했던 인권유린에 대해 인정하고 그 부분에 대한 작은 보상을 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경기도 조례에 발맞춰 평택시에서도 별도의 조례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국가로부터도, 이웃으로부터도, 가족으로부터도 외면 받고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그분들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평택이 그분들로 인해 일정부분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