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폐를 줄이고 줄여 솔직함만 남긴다. 천사의 찢어진 날개를 보는 것 같다
시장에서 5,000원짜리 잠옷 바지를 샀다. 귀여운 곰돌이가 프린팅되어 있는 시원한 면 소재 바지다. 보자마자 혹해서 샀다. 이 바지와 청셔츠를 입고 글을 쓰면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쓰는 일기는 잠옷바지와 청셔츠를 입고 쓰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연인과 함께 국제도서전을 갔다. 아침달 부스에서 송승언 시인과 서윤후 시인을 봤다. 문학동네 부스에선 안미옥 시인과 양안다 시인에게 시집 추천도 받았다. 두 시인 모두 육호수 시인의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추천해 주셨다. 나중에 읽어봐야겠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관성에 의해 지낸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김승일 시인의 수업을 들을 때 가장 처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 누군가가 나에게 꼭 해줬으면 했던 질문인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솔직하지 못하고 이 수업이 궁금했다고 거짓말했다. 시인은 바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속마음을 들킬 때는 감각이 살아난다. 김승일 시인의 시는 솔직하다. 복잡하고 어렵지만 솔직하다. 자신이 뱉는 말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솔직한 말을 적는다. 이미 뱉은 말이라면 다시 생각하고 그건 아니었다고 말한다. 어폐를 줄이고 줄여 솔직함만 남긴다. 천사의 찢어진 날개를 보는 것 같다. 우리는 간혹 솔직함을 이야기하고 웅크리고 있다.
한 일주일을 고민해 봤는데, 나라는 사람은 시를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가만히 있다가도 이상하게 계속 관심이 가고 궁금하다. 시인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까. 내가 바라보는 세상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는 연습. 내 안에 타자를 만들고 타자와 대화하는 연습. 타자의 말을 듣고 쓰기 위해선 정말로 타자가 되어 생각하고,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내가 믿는 이 믿음이 진짜 내 믿음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호접지몽과 같이 타자가 된 이후의 내가 봤을 때 타자의 생각을 가지기 전의 내가 타자로 인식되도록 생각이 굳혀져야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랑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랑 없이도 잘 살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김연덕 시인의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김연덕 시인의 시가 좋다.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관을 누군가도 믿고 있다는 것은 세계를 확장하기에 좋다. 나보다 더 고민하는 사람들이 좋다. 나보다 더 말을 아끼고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좋다.
오늘이 일기에는 딱 하나의 거짓말이 있다.
나는 내가 말한 거짓말이 무엇인지 안다.
이로써 오늘의 일기에는 거짓말이 없다.
솔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