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주작은행성 Jun 27. 2023

화자의 일기쓰기 16

내가 많이 좋아한다는 걸 몰랐으면 좋겠다.  계속 풋풋하고 싶다.

나는 술을 못한다. 선천적으로 맞지 않는다. 몇 도의 술이건 소량의 알코올이 들어가 있으면 토한다. 다른 사람들의 목을 적셔주는 술 너무나도 맛있어 보였다. 그러나 나의 목을 넘어가는 술은 너무 맛이 없었다. 소주는 물론이고 맥주, 와인, 막걸리 전부. 특히 소주와 막걸리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칵테일과 데킬라는 조금 맛있었다. (세부에서 워크숍 때 마셔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마셔본 술 중에 가장 맛있었다.) 30대가 넘어가니 탄산으로는 묵은 체증이 해소되지 않는 날이 많아진다. 술을 마시고 싶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그래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가 없는 편이지만 얼마 없는 친구들에게는 늘 당부한다. 내 생일선물은 차와 시집, 연필을 사달라고. 나에게 줄 시집과 차를 사면서 너도 한번 해보라고. 참 좋다고.


 작두콩 차였던 거 같다. 그냥 있길래 마셨다. 그 이후에는 히비스커스, 루이보스, 캐모마일, 페퍼민트, 펜넬, 레몬밤, 라벤더, 새싹보리, 마테, 얼그레이,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레몬그라스, 유자 등 다양하게 즐겼다. 차의 효능은 느끼지 못했다. 히비스커스를 먹는다고 피부가 좋아지거나 라벤더를 먹으니 잠을 잘 잤다거나 루이보스를 먹었더니 소화가 잘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일 새로운 걸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날에는 집에 가서 차를 마실 생각으로 하루를 버틴 적도 있다. 작년 3월에는 센스 있는 친구에게 오설록 티백 선물 세트를 받았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녹차는 찐 녹차고 꿀배와 유자, 영귤 다 맛있었다. '오설록'과 함께 추천하는 차 브랜드는 '다비앙'이다. 차 종류도 많고 샘플러로 여러 종류의 차를 먹으며 마음에 드는 차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차 브랜드와 종류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아보지 않았다. 그냥 차면 다. 성분이고 제조사고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차를 마실 때 집중하는 미각과 시간이 중요다. 차를 즐기면서 여러 나라와 원두를 사용한 커피도 마셔봤는데, 마찬가지다. 인도/베트남이 조금 더 고소하고, 에티오피아/케냐 쪽이 산미가 세고, 수프리모/예멘 쪽이 묵직한 느낌이다. 애주가가 주종을 고르지 않듯 어느 차/커피 건 상관없다. 나는 차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뿐이다.


너무 깊게 알고 싶지는 않다. 그냥 즐기고 싶다.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고 싶다.

내가 많이 좋아한다는 걸 몰랐으면 좋겠다.  

계속 풋풋하고 싶다.


물을 부으면 은은하게 퍼지는 꽃내음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