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이 주는 힘의 영향력
2019년은 참 나에게 많은 일이 있었던 해였다. 여느 해마다 그랬겠지만, 2019년은 특히나 믿기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던 해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주는 영향력이 참 컸다.
2019.01 원숭이를 구하라(PS 스터디)
2019.02 아마존 인터뷰, 연봉 협상
2019.04 AWS deeprscer 참가
2019.04~06 정원사들(1일 1 커밋) 시즌3
2019.05 APEC App challenge in Chile 수상
2019.06 카카오 모빌리티 퇴사
2019.07 밴쿠버 이사, 아마존 입사
2019.08 Amazon Prime Hackathon Wow award
2019.10 Rewards center 론칭, 정원사들 시즌4 참여
2019.11 스크럼 마스터 시작
2019.12 첫 온콜
2018년 12월부터 시작했던 '원숭이를 구하라' 프로젝트. 함께 모여 algorithm 문제도 풀고 서로 피드백도 주고받는 좋은 모임이었다. 여기서의 경험과 연습이 바탕이 되어 2월에 아마존 면접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2019년 연말에는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monkeys-code org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개방해서 그들이 이젠 시즌 2를 이끌어 가고 있다!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 2019년 2월 21일 오전에 본 아마존 면접은 중간에 배가 아프다고 하고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다.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이기도 하지만, 그 날의 떨림만큼은 잊을 수 없다.
호텔 앞에서 리쿠르터를 기다리면서, 화이트보드와 책걸상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에서 혼자 숨을 몰아 쉬며 면접관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면서(동시에 면접관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합격 통보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매일 아침 메일함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불안감 반 기대감 반.
합격을 통보받고 처음으로 해보는 제대로 된 연봉 협상(카카오에서도 연봉 협상이라는 절차가 있었지만 나는 신입이었고 사실상 통보였다)도 재밌었다. 2020년에는 아마존 생활기를 매거진에 시간이 될 때마다 적어보려고 한다.
강화 학습을 기반으로 한 트랙 자율 주행 리그가 열렸었다. 회사에서 트랙도 지어주고, 차량과 aws 계정을 지원해줘서 이 기회에 강화 학습 공부도 조금 하고, 돈 걱정 없이 시뮬레이션도 많이 돌려보는 기회가 있었다. 완주를 하자가 목표였는데, 완주해서 만족스러웠다. 경기 참가 중인 모습을 sbs에서 찍고 있다가, 내 경기가 끝나고 트랙 밖으로 나오자 한 기자분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얼떨떨하게 인터뷰를 했다. 나랑 같이 간 옆 팀 분들이 한국 리그 1, 2등을 하셔서 내가 더 신이 났었다.
이쯤 되니 아마존 계약서에 사인도 하고, 한국 생활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정원사 모임에 대한 수요는 충분히 있었고,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2018년부터 내게 엄청난 자극과 활력을 준 모임인데 안 할 수가 없었다. 항상 그랬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시즌 1~2에서 진행했던 지식공유회를 하지 않고, 컨퍼런스를 준비하기로 했다. 카카오에서 지원하는 100일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금도 받고, 잔디 어벤저스 멤버들이 잘 도와준 덕분에 컨퍼런스도 수료식도 잘 진행할 수 있었다.
컨퍼런스 준비에 신이 나서 혼자 웹사이트도 만들고 새로 산 아이패드로 로고도 디자인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빠르다. 누군가가 잔디 로고를 보고 마리화나가 아니냐고 했던 피드백도 기억에 남는다.ㅋㅋ
구글 캠퍼스에서 일하는 지인 분이 참여해봐도 좋을 것 같다며 던져주신 이벤트 페이지가 첫 시작이었다. 칠레에서 하는 해커톤이고, 함께 할 팀원을 구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국 생활도 정리해야 하는 판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국가 당 한 팀씩만 뽑는다는데, 내가 될 리가 없지. 이걸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며칠이 지나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해보지도 않고 될지 안 될지 어떻게 아는 거지? 액션을 취하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항상 믿는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한 친구를 영입(?)해서 지원했고, 회의실에 모여 앉아서 온라인 인터뷰를 봤다. 우리는 선발이 되기도 전에 이미 칠레의 여행 스폿들을 알아보고 있었고, 선발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김칫국 마시니까 잘 된다'며 '앞으로도 김칫국을 자주 마시자'라고 했다. 비행기표, 숙소, 공항 픽업이 지원된다고 했다. 너무 신났다!
App challenge를 준비하기 위해 출발 몇 주 전부터 화상 회의를 계속하고 notion으로 프로젝트를 관리했다.
칠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공항 안에서도 코드를 짜며 갔다. 웹사이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인터넷이 안되기에 document 같은 것은 찾지도 못하고 노트패드에 코딩하듯이 코드를 작성했다. 칠레 공항에 도착하니 한 직원이 팻말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신원이 확인되자 APEC 목걸이를 하나씩 주더니 외교관 프리패스 라인으로 데려가 입국 심사를 누구보다 빠르게 마치게 해 줬다. 입국 심사대를 나오니 경호원들이 붙어서 우리를 미니 밴까지 안내해줬고, 우리는 연예인이 된 것 같다며 호호거리면서 Valparaíso로 가는 밴에 몸을 실었다. 도착해서 밤새 또 코딩하고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APEC 참가국 장관들 앞에서 발표를 하려니 매우 긴장되었다. 다행히 우리 둘은 같이 무대에 올라갔기 때문에 긴장이 덜 되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긴장한 채로 10분이 지났고, 발표가 끝났다.
모든 게 끝났다며 저녁에 놀 시간 만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왠 걸.. 갑자기 'The third prize is.... for Lipp, from South Korea!' 하면서 우리를 불러내었다. (아니 사실, 상 받으러 이따가 한꺼번에 나오라고 하는 거였는데 우리 둘이 신나서 그 말도 못 듣고, 그대로 무대로 뛰어가다가 중간에 돌아왔다ㅋㅋ)
남미에 가서 해커톤을 하고 온 이 경험은, 내 인생에서 특이했던 경험 중 하나로 손꼽힐 것 같다.
카카오로 입사했지만 카카오 모빌리티로 분사하게 되었기에 이력서 상에는 두 번째 퇴사로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첫 퇴사였다. 오른쪽 짤을 투척하고 단톡 방을 나가라는 친구들의 추천이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카카오 모빌리티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저 퇴사할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파트장 님에게 커피타임을 요청하고, 한참 동안 커피만 마시고 있자니, 퇴사하는 거냐고 먼저 물어보셨다. 그제야 '아.. 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퇴사 인사하는 것도 시간이 모자라 어떤 날은 티타임만 6번 한 적도 있었다. 첫 퇴사라 어떤 인사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부족했을 거라 생각하며, 죄송한 마음으로 회고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나는 스페인으로 향했었다. 8개월 정도 인턴 생활을 하며 지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해외 기업과 거주 문화를 경험했다. 그땐, 돌아올 날도 명확했고 아빠 카드를 들고 가서 든든했다.
정확히 5년 뒤, 이제는 밴쿠버로 향하게 되었다. 돌아올 날도 명확하지 않고, 아빠 카드도 없었다. 나 혼자서 헤쳐나가야 할 것 투성이었다. 밴쿠버에서 살 집은 찍어 놓은 사진 몇 장만 보고 온라인으로 계약해뒀다(계약금도 입금해 뒀었다). 짐은 이민가방 1개, 배낭 1개, 기내용 캐리어 1개에 들어갈 정도로만 넣었다. 모든게 믿기지 않았다. 꿈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아, 집은 사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공항에서 인사를 할때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눈물이 안 날 수는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한국에 두고 혼자 가는 것이었으니까.
도착해서는 집도 사기가 아니었고, 날씨도 너무 좋고 적응할 것들 투성이라서 슬픈 감정은 저 뒤로 밀려나 버렸다.
아마존에 처음 입사하던 날,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될 미팅룸에 들어가니 'Aree'라고 적힌 이름이 책상 위에 떡하니 놓여있었다. 내가 정말 입사를 하는구나. 2~3년 전부터 상상만 해오던 상황들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었다. 너무 설렜다. '많이 성장해야지.'라고 다짐했다.
입사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프라임 팀에서 해커톤을 진행한다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매니저랑 1:1 면담을 하다가 '해커톤 참여해보는 거 어떻게 생각해?'라고 했더니,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참여해보라고 적극 권장받았다. 입사 동기가 계신 팀에 조인했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디어 논의부터 구현까지 Amazonian들이 어떻게 의견을 나누는지 바로 옆에서 보고 같이 참여할 수 있었던 기회가.
Leadership principle에 나오는 것처럼, disagree and commit을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해커톤을 진행하면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개발했다. 역시 내가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분야는 기획하고, UI를 고민하고, 프론트 단을 구현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서 열심히 해준 결과, 우리 팀은 Wow award를 수상했다! 상패의 크기는 절약 정신을 의미하듯 매우 작고 귀여웠다. 팀원이 6명이었지만 상패는 하나였다. 그 팀 근처를 지나가면 상패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아마존에 입사하고 4달 동안 바쁘게 달려서 새 프로덕트를 론칭했다. Rewards center는 Prime 멤버들에게 credit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beauty 제품을 20불 이상 구매했다면, 다음 쇼핑 때 사용할 수 있는 5불 크레딧을 준다. 처음 business requirement가 논의되던 순간부터, 디자이너와 더 나은 customer experience를 위해 이야기하고 구현하는 과정은 매우 재밌었다. 아마존이라 그런지 조그마한 기능 하나를 넣으려고 해도 scalable 한지를 우선적으로 체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문서화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걸 정말 좋아하는 회사인 것 같다고 느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의 영어 억양에 적응하고, 리모트 회의에 적응하고(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영어는.. 더 어렵다..), 내 의견을 영어로 얘기하려고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프로덕트 만드는 과정을 잘 즐겼다. 대부분의 팀원들이 아마존에 처음 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라서, 4달 안에 새로운 프로덕트를 론칭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deliver the result and earn trust를 했고, 올 해에 또 달린다!
다음 리더가 정해지지 않으면 그대로 묻힐 뻔한 정원사 모임. 시즌 3에 참여했던 구성원 중 한 명이 리딩을 해보겠다고 해서 시즌 4가 시작되었다. 밴쿠버에 있었지만 시차를 극복해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해외 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팀과 사람들에 적응하고, 일이 바쁘다 보니(이것 또한 핑계다) 커밋을 매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했지만, 몇 번 타임존 계산 실패로 커밋을 했는데도 커밋이 안 한 걸로 기록이 되다 보니, 계산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고 점점 커밋을 안 하게 되었다. 그래도 참여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소식을 계속 공유받을 수 있으니까! 라며 자기 위안을 ㅎㅎ
시즌 4에는 구성원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정원사들 커밋 현황판이 있다. 그분의 꾸준한 참여와 기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걸로 GDG에서 발표까지 하고, 그 이후에 다른 그룹에서도 정원사들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공부는 각자 한다지만 모여서 공유하고 교류하는 것에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확신이 들게 되었다!
매니저가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우리 팀의 스크럼 마스터가 되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역할이었다. Product owner인 매니저에게서 high level task를 전달받으면, sprint grooming 회의에 셔 팀원들과 함께 구체화를 시키고 랭킹을 매긴다. Task estimation and assigning 회의에서는 랭킹 순서대로 태스크를 다시 한번 리뷰하면서 task point를 측정하고, 다음 스프린트 때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고 있다.
나에게 큰 챌린지다. 지금까지는 내가 하는 일을 잘하려고 했다면, 앞으로는 다른 동료들이나 다른 팀에서 뭘 하려고 하는지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보다 더 다양한 콘텍스트도 알아야 하고, 일의 우선순위도 논의하고 리딩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분명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미팅에 참석할 때마다 더 집중을 하게 되고, 어떤 게 팀에 더 중요한 일일지 고민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일을 분배할 수 있을지, 잘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스크럼 마스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 얼마 전 scrum workshop에 참석했는데,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음 sprint에 적용해봐야지.
처음으로 온콜을 하게 되었다. 내 순번이 다가오는 찰나, 내 앞에 앉은 중국인 개발자가 얘기했다. '아리, 나 온콜 처음 되자마자 sev-2가 2개 생겼어. 그리고 새벽에 pager가 울렸는데 못 일어나서 매니저에게 escalation 됐어. 그래서 그 이후로는 4시간에 한 번씩 깨고 있어.' sev-2 티켓이 생기면 pager가 울리고, 핸드폰에서 강렬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일정 시간 내에 확인하지 않으면 매니저에게 pager가 울리고, 계속 윗선으로 escalation이 된다.
내 온콜 주간 동안 나에게는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고, 다행히 pager가 울리는 상황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 울릴지 모르기에 항상 노트북, 충전기, 휴대폰, 와이파이 기기를 휴대하고 다녀야 했고, 운동을 가서도 마사지를 받으면서도 항상 나와 함께 했다. 마음 만은 편치 않은 생활이었다.
첫 온콜이라 신고식 제대로 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평화롭게 지나가고.. 온콜이 끝날 때쯤은 한 번 pager가 울려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실수도 하고 배우기도 해야, 나중에 능숙해질 텐데, 지금 경험할 기회가 없는 채로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기대치가 '이제 실수할 시기는 지났지'라고 생각되면 lose trust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곧 다시 온콜이 다가온다. 두 번째 나의 온콜은 어떤 경험을 줄까?
연말이 되니, 다들 휴가를 떠나는 분위기라서 나도 즉흥적으로 Whitehorse라는 도시로 떠나기로 했다. 2시간 반 정도 비행기를 타고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영하 20~30도를 오가는 살인적인 추위의 도시였다. 잠시 손을 꺼내면 금방이라도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고, 칼바람이 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눈보라가 불고 있어서, 버스 정류장 사인은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택시를 타고 도착한 에어비엔비의 집은 벽난로도 있고, 와이파이도 잘 터지는 그런 아늑한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6일 정도를 머물렀는데, 이 중 2일은 WFW(Work From Whitehorse)를 했다. 아마존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다. 내가 원하는 도시에서 머무르면서 원격 근무를 해도 되는 자유가 있다. 4일 정도는 주말도 끼고 휴가도 냈는데, 오로라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힐링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2020년에는 Yellowknife를 갈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2020년에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나의 의견을 영어로 조리 있게 잘 표현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조금 더 소신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회고를 하며 한 해를 되돌아보니 감사한 분들이 참 많네요.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에도 재미나게 지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