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하버드 교육대학원 온라인 비대면 수업 후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1년간 온라인으로 10여 개의 수업들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겠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오랜 대면 수업들이 갑작스럽게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그 혼돈의 첫 단추를 교수님들,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끼우면서 깨달은 온라인 비대면 수업의 성공요인들, 그리고 실패 요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COVID-19. 지긋지긋하고 원망스러움과 동시에, 나조차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 안의 선입견과 의구심을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교육대학원의 모든 수업이 100% 온라인 비대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소식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묻고 싶다. 그 당시 나를 절망하게 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솔직히 말하면 온라인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의 가치와 본질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온라인 수업으로의 전환만큼이나 나를 뜨악하게 했던 소식은 학비 변동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순간 분노했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은 결코 대면 수업의 특장점들을 대신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비를 똑같이 내라고?! 학교 측은 이메일을 통해 거듭 대면 수업과 동등한 퀄리티의 온라인 수업 설계 및 준비를 위해 대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따라서 학비 동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수업이 제아무리 좋아봤자 대면 수업이랑은 수준 자체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며 억울해하던 그때의 스스로에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는 더 이상 온라인 비대면 수업의 가치와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래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말이다.
지난여름 그토록 염원했던 대면 수업을 통해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온라인 비대면 수업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고, 대면 수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 말이다. 당시의 나는 1) 교수진 및 각종 학교 시설들 (도서관, 교실, 체육관 등등)에의 접근성, 2)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함께 배우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커뮤니티, 그리고 3) 두고두고 아쉬운 3년짜리 OPT (졸업 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 정도를 꼽았더랬다. 여기서 내가 애초에 교육대학원에 지원한 이유와 목표를 돌아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는 기술 (technology)를 활용하여 모든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효과성이 분명하고, 전달이 빠르며, 비용 효율적인 교육 상품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필요한 공부와 경험을 위해 대학원에 지원한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다 같이 모여 똑같은 콘텐츠를 학습하는 전통적 교육 방식을 넘어 아이들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방식의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 그런 내가 온라인 비대면 수업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전통적인 대면 수업만이 정답이라 여겼다니. 관점을 조금 바꾸니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엄청난 기회로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전 세계, 다른 시간대에서 접속한 학생들에게 몰입도 높은 비대면 수업을 제공할 수 있는지, 어떤 기술을 적용하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업을 설계할 수 있는지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더 일찍 배우고,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것! 어차피 전통적 교육 시스템은 빛이 바래가고 있었다.
교육대학원의 많은 교수님들께 온라인 수업 설계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한다. 6월에 비대면 수업 전환 발표가 났고, 9월부터 학기가 시작되니 주어진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학생들은 도끼눈을 뜨고 온라인 수업이 학비 값을 제대로 해내는지 평가하려 할 것이 뻔했다. 실제로 몇몇 수업에서는 매주 수업이 끝나자마자 설문조사를 통해 '이번 주에 수업 운영 측면에서 좋았던 점과 부족했던 점, 개선방안 아이디어'를 수집했고, 바로 그다음 수업부터 학생들의 피드백을 적용하였다. 교수가 스스로의 경험 부족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학생들의 솔직한 피드백을 구하고, 신속하게 피드백을 반영하여 발전된 수업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교육 분야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바람직하고 멋져 보였다. 대학원에 지원할 때는 애초에 완벽하게 완성된 수업을 기대했지만, 막상 수업 설계 과정에 직접 참여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배운 바가 많았다.
내가 지난 1년간 보고 느낀 온라인 비대면 수업의 성공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수업 예습 자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예: 텍스트 기반의 기사나 논문, 수업 자료 녹음 파일, 동영상, 전문가 인터뷰 등)
전체 그룹 수업 중간에 소규모 그룹 토론 시간을 마련하여 (Zoom breakout room) 학생들이 충분한 발언시간을 갖고, 직접 문제를 풀어보거나, 토론하거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로 적용해볼 과제를 제시한다 (예: 수업과 프로젝트를 동시에 돌림으로써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바로 적용해볼 수 있도록 장려)
교수나 조교에게 1) 규칙적으로, 그리고 2) 상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채널 혹은 시간을 확보해둔다. 대면 수업을 울부짖었음에도 비대면 수업에서 일절 불평할 수 없었던 이유는 모든 Teaching Team이 '이 분들은 이 수업만 가르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학생들에게 할애했고, 질문이나 고민을 공유하면 짧게는 몇 분, 길게는 하루 안에 정성스러운 답변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포용적인 수업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스스럼없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일정 규모 이상의 사람들 앞에서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예전에는 말이 많은 학생은 적극적이고, 수업에 집중을 잘하고 있다고 여기고, 발언을 하지 않는 학생은 그렇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으나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소규모 그룹 안에서 빛나는 학생들을 여럿 보았다 (나 역시 그런 편이다).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위협이나 부담감을 최소화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건 수업 운영진 입장에서 많이 힘들어질 수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수업 하나를 두 가지 다른 요일 혹은 시간 대에 들을 수 있도록 옵션을 주는 것도 추천한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역시 다양성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아침에 생산적인 일을, 저녁에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대 옵션이 있을 때마다 가장 이른 시간을 택했다.
추가적으로, 집중력이 쉽게 분산될 수 있는 비대면 수업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짧은 명상이나 오늘의 내 심리상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수업을 시작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강력추천이다. 대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각자 눈치껏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다면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등) 비대면 수업은 운영자들이 의식적으로 페이스 조절 타이밍을 제시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비대면 수업, 이렇게는 곤란하다:
대면 수업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오는 것. 온라인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과 다른 방해, 위협 요소를 갖고 있다. 수업 방식의 특성에 맞게 새로이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대면 수업은 학교에서 조성해놓은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의 개인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만큼 방해 요소도 많다는 뜻이다. 나 역시 수업시간에 한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오거나, 뜬금없이 아파트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정말 많은 준비와 장치 (이목을 끄는 수업 자료와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토론 또는 활동), 그리고 무엇보다 교수진의 에너지 넘치는 수업 진행이 필수다.
일방적인 수업방식 (교수가 강의를 하고, 학생은 앉아서 듣고 있는 방식). 온라인 수업의 특성상 한 번에 한 사람만 발언할 수 있다는 점은 Zoom의 아쉬운 점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수시로 학생들의 참여를 장려하고, 수업 참여자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적극 확보 &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수님이 한참 이론에 대해 설명중실 때 학생들 입장에서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조교들이 Zoom 채팅창을 관리하면서 학생들의 질문을 접수해두고, 추후 순서대로 발언권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 나중에 더 생각나면 추가해야지. 결론적으로 학교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다행히 학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학생마다 개인차가 있을 듯). 내년에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