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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Nov 08. 2022

상처는 그대로 드러내야 낫는다

몸과 마음의 장애에 대하여

세상에는 정상도, 평균도, 보통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상일뿐이고, 현실에 존재하는 듯 보여도 다들 그런 척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했다.


수면장애, 우울증, 그리고 그밖에 내게 있다던 수많은 병명들.일어나자마자 안경 없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시력의 눈. 낫지 않는 피부의 흉터인지, 상처인지 모를 것까지. 나는 내가 정상이 아니라 생각해 더 흐렸고 더 슬펐다.


다른 사람들을 알기 전까진 그랬다. 누군가 나도 너처럼 그래,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다. 다들 정상인인 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똑같이 흉내 내는 걸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사연은 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누군가의 슬픔을 알면, 무엇도 쉬이 질투하게 되지 않는 법이라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귓가엔 가사 한 마디가 맴돈다. 누구나 자신의 지옥 속에서 산다는 말.


우린 서로를 모르고, 그래서 더 나만 다른 것 같고, 이상한 것 같고, 별난 것 같고,

혼자인 것만 같다.


하지만 오래오래 회자되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말처럼 그저 정말로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 수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눈이 잘 안보이거나, 귀가 안 들린다 해도,

오래도록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다 해도,

마음이 축 쳐져 있는 날이 많다 해도,


그게 이상한 것도, 나쁜 것도, 슬픈 것도

불쌍하다는 눈빛을 받아야 하는 일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아파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각과 청각에만 의존하는 길이 아니라

촉각, 후각도 사용할 수 있는 길이라면,


오래 준비한 시험에 붙은 사람도

떨어진 사람도 모두 고생했다고 안아줄 수 있다면


런던의 날씨와 니스의 날씨가 다른 것처럼

그저 네 마음엔 흐린 날이 많을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면.


상처는 상처가 아닌 게 될지도 모른다.


남몰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방에 틀어 박혀

커튼을 치고 밤이고 낮이고 우는 게 아니라


그저 다 함께 빛 아래 껴안고 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신체적 장애에 관한 글을 읽었다.

“사회가 장애를 바라볼 때 장애가 불행하고 나쁜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부시키지 않아야 하며, 사람들이 장애에 관해 거리낌 없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글을.



상처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하여, 몸이건 마음이건 다른 무엇이건이든 간에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진 무릎 위 밴드를 붙이고 생활하면 낫기는커녕 고름이 생기니까. 씻을 때 물이 들어가 습기가 차고 딱쟁이가 자리잡지 못 하니까. 가리는 건 더 아프지 않게 잠시 보호할 뿐이니까.


무릎 위 상처를 다른 피부들처럼 햇살에 쬐이고, 바람을 맞게 하고 조금 아프더라도 물을 맞게 하고 대신 더 자주 들여다보며 자세히 보살피는 일.


그게 세상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상처는 상처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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