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닭 Jul 12. 2020

우울, 나를 그대로 바라보기

습관처럼 굳어진 패턴을 부숴도 제자리걸음 하는 나

사람은 저마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습관처럼 익숙해지면 똑같은 일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아마 죽을 때까지 반복될지도 모른다. 내 패턴 중 하나는 우울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인이 된 후로 무기력을 동반한 우울함이 심해졌다 가도 괜찮아지고는 한다. 괜찮다 싶으면 다시 안 좋아지고. 계속 반복된다. 한때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고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기도 했다. 2018년 크루즈 근무를 포기하고 떠밀리듯 급하게 모스크바에 온 이후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방향을 잃어버린 탓일까. 앞이 깜깜해지면서 어릴 때부터 덮어놓거나 피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릴 때 괴롭힘을 당했던 일이나 성희롱을 당했던 일, 중학생 때까지 애들이 나를 싫어해서 시비 건 일들. 작은 기억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나를 지배했다. 모스크바까지 와서 똑같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매일 20분씩 명상을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 무기력해질 때마다 생각에 빠졌다는 걸 인지하려고 한다.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이 들었구나. 왜일까. 아, 이래서 이렇구나.’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려고 한다. 차분해지면 일기를 쓴다. 처음 해보니 혼란스럽다. 내가 ‘나’에 갇혀버리는 게 대단히 쉬운 일이었다. 지난 긴 시간 일어날 힘이 없기도 했지만 누워서 우울한 감정에 빠지는 게 익숙했다.


처음 3개월은 변화가 없었다. 2018년 12월 23일에 썼던 일기다. 사람 말에 집중이 잘 안 돼서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낮에는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수면유도제를 먹어도 밤에 잠이 안 온다. 자다가도 누가 가슴을 세게 치는 느낌에 놀라서 여러 번 깬다. 최소한 성의가 없어 보이거나 같은 말을 반복해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긁으면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쉽게 화가 난다. 잘 말하다가, 잘 지내다가 갑자기 감정에 북받친다. 주변을 극도로 의식한다. 정신을 잠깐이라도 놓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기력 없이 시간을 보낸다. 하루 종일 긴장한 탓인지 종종 심장이 아프다. 지금 내 상태다. 나아짐의 정도가 미미하고 좋았다 나빴다 계속 반복하다 보니 저절로 여러 생각이 든다. ‘한국에 있으나 여기 있으나 똑같아 보이는데 괜히 돈 들여왔나?’, ‘나에게 나가는 돈이 많은데 그 비용만큼 열심히 하고 있나?’, ‘주변에서 이것저것 도와주는데 난 뭐 하고 있는 걸까?’ 하는 것들.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천천히 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고 매일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똑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사회로 다시 나가는 게 두렵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잘 지내는 것도 아니다. 애매하게 있다. 나를 놓지 않는 것. 이것만 겨우 잡고 있다. 1년이 가까이 지나도 큰 변화는 없었다. 자신을 속이고 있어서 울었다. 남들 앞에서는 열심히 하고 자신 있는 척하면서 거짓말하지만, 집에 오면 무기력해지는 나. 힘들기 싫어 도피하려고 컴퓨터나 눕기 같이 덜 중요한 것에 빠진 내 모습. 사람들 앞에서와 방 안에서 보는 내 모습과 달라서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에서 지낼 때와 다를 게 없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면서 전부 다 놓고 싶어졌다.


모스크바에 온 지도 벌써 2년째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약이 없어도 잠이 잘 오고 가슴이 아프지도 않다. 과거의 기억들은 좋은 기억들로 채워지면서 흘러갔다.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내가 하는 일에 확신도 생겼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문득 상처받거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 생각에 빠지면서 무기력해진다. 내가 처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수업을 빼먹기도 하고 일주일 동안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잘 넘어간다 싶으면 돌아간다. 뚜렷한 결과가 보이질 않으니 자신감이 사라진 탓일지도 모른다.


학업, 장학금 유지 실패

대학생 때부터 학사 이후로 더는 공부는 안 할 거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유학만큼은 내 삶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늘 그랬듯 내 예상과는 다르게 모스크바에서 유학하게 됐다. 운 좋게 장학금도 50% 받았다. 입학한 뒤로 매일 바쁘게 지냈다. 디지털 대학교도 다니고 있던 터라 석사와 병행해야만 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영어와 러시아어 공부를 했고 집에서는 간단한 집안일을 했다. 주말에는 독서 모임과 한국어 과외로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동시에 했다. 그래야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기부여가 낮은 편이라 공부만 할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 점수가 기대보다 낮게 나와서 장학금을 더는 못 받게 됐다.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 눈물이 나와서 밖에 나가서 식히고 왔다. 재시험 보지 않고 한 번에 통과했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결과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수업은 정말 열심히 했다. 매주 세미나가 있어서 자료를 읽어보고 발표를 했다. 조별 발표도 하고 에세이도 쓴데다가 조별 토론까지 했다. 이 모든 걸 일주일에서 이 주일 안에 준비해야만 했다. 버겁지만 재밌어서 지식을 많이 얻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기한에 맞춰 겨우 제출하거나 피피티도 대충 만들어서 읽다시피 발표했던 과목은 오히려 점수가 잘 나왔다. 열심히 하면 결과가 기대 이하고 막말로 대충할 때 오히려 결과가 좋게 나온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하면 망할 것 같다는 느낌을 곧잘 받았다. 그런데도 강박적인 감정이 강하면 쉽게 무시했다. 어떤 불행한 생각이 들면 강박처럼 굳어져서 소통이 안 되고 주변을 보기가 어렵다.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미 강박적인 사고가 날 통제한다. 그렇게 이끌리듯이. 망한 시험도 그렇다. ‘이 과목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시험을 잘 봐서 꼭 장학금 유지를 해야만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습관처럼 굳어져 강박처럼 날 쫓아다녔다. 수업마다 자신이 없었다. 공부했는데도 틀릴 것 같고 망할 것 같았다. ‘장학금 못 받으면 어떻게 하지? ‘안 좋은 생각만 연이어 들었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남는 게 없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등록금을 지원을 받고 용돈도 받기 때문에 초라해진다. 대학생 때는 대출 받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용돈을 벌어서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집에 말하는 순간 나에게 쏟아지는 눈빛을 감내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이 결과는 내가 자처한 일이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지치고 무기력해졌다. 수업과 과제에 최대한 집중하지 못했다.


처음은 어렵다. 새로운 환경에 속하기나 새로운 삶들 속에 있기 같이 ‘속하다’는 단어를 체득하기까지 온 몸에 엄청난 고통이 따라온다. 즐기는 정도의 새로움은 쉽다. 깊이 생각 안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내 생활로 가져오면 완전히 달라진다. 뚜렷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함, 걱정이 끊임없이 따라온다. 적응하려고 있는 힘껏 눈알을 굴리면 새로움에 얼추 맞춰진 것 같다. 속해 있으나 속하지 않은 순간 밑바닥 어딘가로 깊이 내려간다. ‘난 어디에 있는 걸까?’, ‘뭘 향해 가고 있던 걸까?’ 정작 해보면 별 게 아니라는 것을 내 몸이 습득했으면 좋겠다. 예민해지지 않아도, 열심히 눈 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실하게 몰라도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이 전부이다. 그러니 매일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프지 않아도 된다고. 어떤 상황에서든 편안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지만 나한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강박적인 생각을 할 틈을 안 주려고 어떻게 말하면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고 있다. 끊임없이 단순한 일을 해서 시선을 환기하는 것.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