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가 살면서 결핍은 필수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글게 사는 것.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지금 괜찮은데, 같은 가치관을 추구하지만 더 이상 변화는 없을 것 같달까? 스스로 변화하려는 힘은 결핍에서 오는 것 같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간절함이기도 한 것 같다. 어릴 때 부모의 속박과 간섭이 심했다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거나 기숙사 있는 학교와 직장으로 간다던지, 어릴 때 학업을 제 때 마치지 못했다면 회사 다니면서 공부를 다시 한다던지, 돈 없던 시기가 길어서 돈을 벌길 원했다면 스스로를 갉아먹더라도 어떻게든 일을 하는 것 등. 이 모든 건 결핍을 채우려는 발버둥이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뭔가를 이뤄내기 위한 절박함이 보이기도 하다. 가끔은 처절하기까지 한 몸짓들.
난 내가 결핍이 많다고 느낀다. 어릴 때 사교성이 없어서 늘 혼자였다. 친구를 갖고 싶었고 사람들과 섞이고 싶어서 성격을 바꾸려고 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 경험이 아닌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일을 많이 벌렸다. 통장잔고가 0원이라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가짐. 이런 것들은 모두 결핍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실은, 꽤 오랜 시간 결핍을 증오했다. 괜찮다가도 어떤 사람들을 만날 때 (가족,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들, 특정 친구..) 너무나도 쉽게 드러났거든. 결핍이 보이는 순간 '넌 이건 고쳐야 해~', '그건 너의 안 좋은 점이니 이렇게 해봐~.'라는 말들로 대화가 채워지니깐.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타인은 나를 낮게 본다고 느껴졌다. 나를 대하는 태도와 하는 말이 한순간에 달라졌기에. 나에게 결핍은 숨기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희한하게도 결핍은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채워지지 않았다. 밑 빠진 독처럼 같은 행동이 반복됐고 이는 허무함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처럼 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스스로에 대한 증오가 더 커질 뿐이었다. 결핍은 정말 안 좋기만 했던 걸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왜 그렇게까지 숨기려고 했을까. 타인이 내 결핍이 괜찮다고 하는 순간, 나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결핍을 채워줄 타인이 존재한다는 걸 눈으로 보기도 하고 되려 신경 쓰지 않는 타인이 있기도 하다. 결핍은 모두에게 두드러지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누군가에겐 멋있게 비칠 때가 있다. 결핍을 받아들이고 원동력으로 쓸 수 있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결핍이 많은 이유로 가진 좁은 생각들, 사람들에게 저지른 실수들, 선택들.. 왜 그렇게 밖에 못 했을까, 후회로 번져 생각에 빠지고 잠 못 이루기도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지난 시간보다 좀 더 넓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