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롸이프 Jul 26. 2024

13년 차 대기업 회사원의 말로(末路) (1)

나는 계란으로 바위를 쳤다


2012년 여름, 나는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미국에서 석사까지 하고 와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더니 동기들 사이에선 왕언니, 큰누나로 불렸다. 한국에서 20대에 누려보지 못했던 대학생활을 다시 하는 기분으로 동기들과 좌충우돌 패기 넘치는 신입 시절을 보냈다.


‘이래서 대기업 가라고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회사의 복지 또한 깨알같이 즐겼다. 때 되면 회사 포인트로 해외여행을 갔고, 스노보드, 요가, 골프 등 웬만큼 하고 싶은 건 다 누렸다. 미국에서 나름 모범생?으로 보낸 지난 학창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했다. 물론 덕분에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사이버 머니였고.


맡은 업무는 전공과 다른 일이었지만 재미를 느껴서 열심히 했고, 남들보다 잘했다. 선후배, 동료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냈다. 나름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회사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조차 했다.


여자로서도, 딸로서도 모자라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30대 중반에 결혼했고, 딸을 낳았다. 육아휴직도 알차게 1년 썼고, 사원-대리-과장으로 순순히 승진을 거쳐 계열사에서 지주사로 올라왔다.


어느덧 부장급이 되어 6살 아이를 둔 정신없는 워킹맘이 됐다. 전생에 무슨 죄를 크게 지었는지 주말부부 독박인 나는 3년 꼬박 회사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하원시키며 출퇴근을 했다.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은 이름난 회사에서 일하는 며느리를 늘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러던 13년 차, 큰 게 왔다. 그동안 회사생활에서 크고 작은 일이야 늘 많았고, 매번 이번 고비가 가면 다음 고비가 온다는 마음가짐으로 헤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 고비는 심상치가 않았다. 내가 하는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연구원 출신 경제학 박사 낙하산 Y가 조직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같은 직급이었지만 내 파트의 리더라고 했고, 우리 회사나 홍보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앞길 창창한 선배님들이 와야 할 리더 자리에 낙하산이 떡하니 앉아 신입사원처럼 가르쳐가며 리더로 모시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나도 짬바가 있는 실무자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13년 차에 마주하자니 전혀 웃음이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경제학 박사가 만물 박사라도 되었나.


게다가 연구소 테두리에서 알을 깨고 갓 나온듯한 Y와는 공통점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가설과 이론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연구 영역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며 존경받아 마땅한 분야임은 틀림없다.) 후배와 셋이 밥을 먹는 시간조차 고역이었고 왜 이런 인사가 이뤄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비즈니스 관계로서는 부족함이 없도록 협조했다. 나는 프로페셔널 워킹맘 아닌가? 주어지는 업무는 늘 마감 기한보다 빠르게 완성해 준비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조직의 성과로 갖다 바쳤다.


하지만 Y는 결국 나의 태도를 걸고넘어졌다. 왜 상냥하지 않으냐, 다정하게 대해달라, 쌀쌀맞다는 둥. 은연중에 내비친 나의 차가운 눈빛과 퉁명스러운 말투,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퉁명스러운 아는 척이 텃세로 느껴졌는지 박사님의 자존심에 상당한 스크래치를 냈나 보다. 후배와 나를 수시로 불러다 불만을 야기하고 잘 지내보자고 한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고, 다방면으로 고충을 상담했지만 나의 조직장 T는 여자들끼리의 질투와 싸움으로 치부했고, 최종적으로 Y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3년간 나는 업무 성과를 인정받아 우리 실에서 가장 높은 고과를 받았다. 이는 T가 내린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면담은 지나온 회사생활에 대한 회의와 모욕감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Y는 하반기에 승진을 시킬 겁니다. 롸이프님 지금 행동을 똑바로 하지 않고, 한 번만 더 이런 잡음이 들리면 바로 인사조치를 시킬 생각입니다. 한 살 많은 언니가 먼저 승진하게 되니 기분이 안 좋으세요? 듣자 하니 롸이프님도 ㅇㅇ와 사이가 안 좋다던데? 같은 업계에서 선후배로 계속 얼굴 보고 일하려면 행동 똑바로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앞으로 더 이상 이런 면담은 없길 바랍니다.”


“?”


나는 T가 작정한듯이 내뱉는 모든 문장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 벙찐 얼굴을 하고 나왔다.


Y는 도대체 무슨 업적으로 승진을 한다는 것이며

나의 행동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ㅇㅇ과의 불화는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며, 내 뒷조사라도 하고 다녔다는 말인가?


그전에도 T는 이 사건을 두고 공공연하게 여자였으면 둘 다 당장 잘랐을 거라는 얘기를 하고 다녔고, 나는 조만간 업무 배제가 될 수순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면담으로 나는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모멸감과 수치심, 배신감, 분노, 억울함이 뒤섞여 어찌할 바를 몰랐고, 심장이 너무 뛰어 과호흡이 오고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이틀 고민 후 인사팀을 찾아가 고충상담을 했다. ‘나는 이제 어쩌면 좋나요’로 시작된 면담은 어느새 회사 노무사를 만나고 있었다. 나의 경위서를 보고 난 노무사는 인사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며 T와 Y를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를 지칭하기 시작했고, 무엇을 원하는지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건.. 협박받지 않고 내 일을 하는 것.. 그리고 T의 사과.. 잠깐, 근데 내가 인사위원회를 연다고?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뒤로는 노무사와 사실 확인과 증거채집, 가해자 지정 건 등으로 수차례 전화를 주고받았다. 이 시기가 사실 제일 고통스러웠던 순간이다. 나를 지키고자 했던 절규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상처를 다시 후벼 파고 있었다.


그러던 무렵 스위스 여행을 앞두고 갑자기 인사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인사 내부에서 노무사가 올린 보고서가 어떻게 올라갔는지 부장 따위가 감히 지주사 실장을 대상으로 고발을 해 내부 분란을 일으키려는 난봉꾼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새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사의 수장은 이 일을 크게 키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의 경위서, 고충 따위는 팩트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주사 임원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었나 보다.


그렇게 노무사에서 다른 인사담당자 K로 담당자가 바뀌었고, 모든 상황은 리셋이 됐다.




작가의 이전글 나 이 집에서 안 살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