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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Jul 29. 2024

13년 차 대기업 회사원의 말로(末路) (3)

일상생활 및 직업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


사과를 빙자한 굿바이 면담 후 나는 곧바로 계열사 전배를 준비하게 되었다.


마침 상황을 잘 알고 있던 계열사 선배로부터 사내 모집 공고가 뜬 건을 소개받았다. 지금 하는 업무와는 다르지만 좀 더 사업을 확장해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관심이 갔다. 바로 양쪽 인사 부서와 얘기가 되어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동안 여러 사례를 지켜본 바, 사내 모집이 뜬 부서는 대부분 누구나 가길 희망해서 너도나도 손드는 곳이 아니다. 일이 너무 많거나, 조직구성원 중 특히 리더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신생 팀이거나 등등. 구성원이 자주 바뀌거나, 자체적으로 사람을 채우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게다가 찾는 연차가 나와 맞는지, 기존 구성원들과의 합도 고려하자면 성사되기가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럼에도 해당 팀에서는 나를 한 번 만나겠다고 해 면접을 보게 됐다.


면접자리에서는 평이한 질문들이 오갔다. 왜 직무 전환을 하고 싶은지, 나의 장단점이 뭔지, 영어로 대답을 해보라는 등 매우 예상 가능하면서도 신입사원 수준의 면담이 진행됐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미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자신감이 한껏 바닥을 치고 있었고, 내가 스스로 느낄 정도로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결국 잘 되지 않았다.


인사팀에서는 현재 내가 갈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고 했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그래서 결론은 내가 알아온 자리 외 아무 대안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한편, 나는 직장 내 갑질 외 노무사를 만나는 과정에서 심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사실 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팀 구성원들의 면담이 일부 진행되었고, 여러 루트로 알지 않아도 될 뒷 이야기들을 알게 되며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됐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 내부 고발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며 괴로웠다.


회사를 12년 동안 다닌 결과가 고작 이거라는 생각에 어디 가서 혼자 펑펑 소리 내서 울고 싶었지만, 이 세상에 다 큰 어른이 어디 가서 대성통곡할만한 곳은 마땅치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주말부부인 딸과 손녀 봐주시느라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는 멀쩡한 척을 하느라 더 힘들었다. 나를 지지해 주는 동료, 선후배들과 부둥켜안고 우는 것으로도 버티기에 한계가 왔다.


결국 친정엄마는 내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어 보였는지 어느 틈엔가 요즘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정신 차리라고 한소리 했을 엄마는 그날따라 아무 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수고 많았다고 했다. 집에서 그나마 잘 잠그고 있었던 눈물 수도꼭지는 그날 폭발해 버렸다.


나는 심리 상담센터를 거쳐 주변 소개를 받아 결국 정신과에 갔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평소보다 조금 자주 울고 우울감이 들어 잠이 잘 오지 않은 것뿐인데... 나는 내가 생각했던 우울증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의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 때문에 끝까지 병원 가기가 망설여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에 간 건 요즘 내가 가장 잘한 결정이다. 이 작은 약이 머릿속에 들어가 무슨 마법이라도 일으키나 싶을 정도로 감정 기복이 조금 나아진 기분이 든다. 별다른 부작용도 없다. 무엇보다 밤을 새우거나 자주 깨지 않고 통잠을 잘 수 있어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롸를 낳고, 아니 임신하고 나서부터 밤에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으니 거의 6년 만에 제대로 된 잠을 자는 듯하다.


약을 1~2주 먹고 정신이 좀 차려지는 듯하자,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로 모든 걸 끊어내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올 초부터 계속하고 있었다. 사실을 (때로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선전하는 프로파간다 같은 업무에 지쳤고, 무엇보다 사람들에 지쳤다. 아니 사람이 무서웠다. 지금 하는 일보다 나 스스로와 세상에,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게 내가 원하는 걸 찾는 시작 아닌가?


매주 만나는 정신과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그날로 좀 더 센 약을 처방해 주셨다. 중요한 결정은 컨디션이 예전과 같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하는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퇴사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차라리 휴직을 하고 안정을 조금 더 취하고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고. 나는 그럴듯한 변명을 했지만 이 현실을 무턱대고 도피하려는 마음 한켠을 읽으신 것 같았다.


그렇게 병가를 쓰기로 하고 진단서를 인사에 제출하자 K의 답변 메일이 왔다.


”병가 신청을 위해서는 규정상 2차 의원(종합병원) 진단서가 필요하고, 심사 후 승인 여부를 알려 주겠다. 여태 롸이프님의 니즈를 반영해 재택을 하도록 회사가 배려했으나, 그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 병가 심사 기간까지 사무실로 다시 출근을 하시오. 현재 우리 회사는 재택을 종료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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