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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Aug 02. 2024

13년 차 대기업 회사원의 말로(末路) 에필로그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고 있긴 하지만 가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은 때가 있다. 그때마다 메모장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일들을 곰곰이 돌이켜보고 생각을 정리한다. 대형 쇼핑몰 안의 카페에 앉아 카공족이 되어 평일 낮에 오가는 사람들을 몇 시간씩 관찰한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일은 다시 하면 된다. 아침마다 자고 있는 롸 얼굴을 보며 미안한 마음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유치원을 째고 보여주고 싶은 아동극을 보러 갈 수도 있고, 지난 스위스 여행처럼 자연을 찾아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도 된다. 무엇보다 이 찜통 같은 더위 속에 시원한 카페에서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날을 위해서라도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주말사이 글 조회수가 수천 회를 넘기고,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서너 명이었던 구독자 수는 80명을 넘었다. 같은 처지라는 공감과 응원의 댓글, 미래를 향한 조언과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쓴소리 모두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회사원들에게 세상사람은 세부류일 거다. 회사를 다니고 있거나, 과거에 다녔거나, 회사를 다니는 가족 또는 지인이 있거나. 나처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 이렇게 많구나… 최소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는 내용이구나 싶었다.


운명을 믿지 않지만 최근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생겼다. 한때는 팀장으로 모셨던 존경하는 회사 선배를 길 가다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안부 연락이 와서 서로의 심리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읽고 싶었지만 미뤄둔 책을 보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하고.


‘어차피 다 부질없다 ‘, ‘회사는 너의 편이 아니다’, ‘조직이 원래 그렇다’, ’ 결국 상처받는 건 너다 ‘, ’ 쉬다 보면 마음 정리될 거다 ‘, ’ 힘내라 ‘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듣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뭐든 뾰족하게 들렸던 말들이 지금은 점점 머리와 마음으로 둥글게 받아들이고 있다.


’Things happen for a reason’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을 믿는다. 지금 이 상황도 넥스트 챕터 어디론가로 향하는 길목이겠지.


나는 늘 회사원이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았고, 규칙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해 줬기 때문이다. 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회사가 이제는 나를 회사 밖의 세상으로 인도하고 있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긴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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