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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Aug 20. 2024

결혼하지 말지 그랬어

왜 그랬어


늘 여름엔 롸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차에 느지막이 가족여행을 속초로 떠났다. 8월 중순이면 그래도 바다에 들어가 놀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물은 벌써 얼음장 같다. 수영장에서만 놀던 롸는 격하게 넘실대는 동해 바다의 파도를 보고 겁을 먹었다.



뉴스에서 본 해파리도 심심찮게 보였고, 온몸에 붙어 질척대는 모래와 함께 올해도 바다 물놀이는 실패다. 강릉에서 바다가 보이는 고등학교를 다닌 남편은 바다에 대한 감흥이 없다. 연애할 때도 해안가 드라이브 말고 제대로 바다를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관광객과 커피숍으로 가득 차버린 강원도 해변가 근처에도 잘 가지 않는다. 제네바 호수에서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수영을 언젠가는 꼭 하리라 다짐한다.  


결국 인공 파도풀과 미끄럼틀, 소독약 냄새를 보장하는 근처 리조트의 워터파크로 발길을 돌렸다. 여느 활동적인 남자아이 못지않은 체력을 가진 6살 롸는 쉬지 않고 물놀이를 하고, 나는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물에 둥둥 떠다니던 롸가 갑자기 내 옆에 와서 중얼거렸다.  


“어이구 결혼하지 말지 그랬어~ 결혼하지 말지~”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다시 말해달라고 하니 내가 들은 말이 맞다. 왜 싸우냐며, 결혼하지 말았어야 한단다. 대화 내용은 잘 못 들었을 테고 아마 나의 목소리 톤이 싸우는 걸로 들렸나 보다. 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하구만? 나와 남편의 대화는 보통 ‘남편의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 -> 타박한다-> 시정한다’의 반복인 듯하다. 안 그래도 나 스스로도 좀 느끼고 있어서 조심하고 있었는데, 평소의 대화에서도 남편에게 핀잔을 주는 듯한 말투가 튀어나왔나 보다.


‘엄마 아빠 싸우는 거 아니야, 그냥 얘기하는 거야’라고 해명했지만, 6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니 당황스럽고 미안했다. 사실 롸가 이런 얘기를 한건 처음이 아니었다. 둘 사이 묘한 긴장감이나 분위기를 느끼는 순간에 ‘싸우지 마세요’라고 한다든지 갑자기 애교를 부린다든지 할 때가 요즘 들어 가끔 있었다.


그날 수영장에서도 남편은 롸와 몸으로 놀아주기보다 말 그대로 ”보는“ 수준의 놀이를 하고 있어 못마땅하던 차였다. 남편은 덩치는 산만하지만 쿠크다스 같은 체력을 가졌다. 툭하면 감기몸살이 오고, 롸를 보다가도 순식간에 에너지가 바스러진다. 나도 결혼 전에는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 었다고. 물론 걱정이 유난히 많은 남편은 수영장에서 즐거움보다는 아이를 다치지 않게 잘 봐야 한다는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거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건 항상 준비물과의 전쟁이다. 일정에 수영이 끼어있으면 챙길게 더 복잡해진다. 이유식, 기저귀를 떼기 전까지는 여행을 가볼까 하다가도 챙겨야 할 짐 생각에 몇 번을 포기하곤 했었다. 꼼꼼히 챙겨도 결국 빠뜨리는 게 생기지만 이젠 대충 가서 거기서 사자라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 어쨌든 파워 J에게 돌발상황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럴 땐 자기 몸만 챙겨 오는 남편이 부럽고 얄밉다. 물론 남편에게 준비를 맡기면 더 화가 날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상황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주말 부부로 살고 있는 나는 이런 모든 일상이 문득 화가 나서 남편에게 다 쏟아부을 때가 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옆에 아이가 있고. 내가 어려서 가장 싫어했던 상황을 내 자식에게 똑같이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몸서리치게 나 자신이 싫어진다.


나는 남편을 애써 이해하려고,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어떤 상황이 롸에게 더 안 좋을지 비교해 나 자신을 설득하는 방법을 쓴다. 롸에게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여주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과 일주일에 한 번 아빠를 만나서 잠시 유튜브 영상 시청의 시간을 갖는 것, 둘 중에 어떤 게 더 롸에게 안 좋은 영향일까. 몸에 안 좋은 돈가스 먹이기, 쓸데없는 장난감 사 오기, 밤에 늦게 재우기… 글로 써놓으니 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 어느 것도 엄마 아빠의 다정한 모습과 바꿀 수 없다. 물놀이를 망친건 벌써 차가워진 바닷물도, 남편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목소리는 더 상냥하게 바꾸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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