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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ug 10. 2018

여름날 호박꽃의 맛

호박꽃튀김과 냉메밀


바싹 마른 대지가 장맛비로 목을 다 축이기도 전에 엄청난 폭염이 찾아왔다. 그 어떤 때보다도 싱그럽고 생명력 가득한 계절이건만,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여름을 마냥 즐기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이 풍성한 계절을 그냥 흘려보낼 수만은 없다. 북태평양 고기압 찜통 속에 습기를 흠뻑 머금어 무거워진 몸을 움직여본다.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호박꽃은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열기가 덜한 이름 아침부터 꽃을 피우는데 수수하면서 화려한, 상반되는 자태를 동시에 뽐낸다. 은은한 향이 널리 퍼지면 꿀벌들이 줄을 서서 꿀을 빤다. 태양의 고도가 45도를 넘어서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꽃잎을 오므린다. 흔히 호박꽃을 조금 못난 모습에 비유하곤 하는데 활짝 핀 호박꽃을 본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리라.


호박꽃은 우리에겐 조금 낯설지만 전으로도 튀김으로도 심지어 만두까지 만들 수 있는 활용도가 높은 식재료다. 유럽에선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여름의 맛 가득 품은 호박꽃을 따다가 튀김을 했다.


   

호박이 달리지 않은 수꽃들을 따왔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인지라 양지바른 곳에 있던 호박꽃들은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시들었다. 물에 담가 두면 살아날까 싶었지만 줄기가 톡톡 떨어지며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할 수 없이 멀쩡한 호박꽃들만 사용했다. 가위로 한쪽을 잘라 벌린 다음 수술을 잘라낸다.



수술을 정리해낸 호박꽃은 흐르는 물에 살살 씻은 후 물기를 제거하여 준비한다. 조리하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굳이 꽃받침을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에 있던 다른 식재료도 꺼내보았다. 마늘종과 아삭한 맛이 좋은 미인 풋고추, 일본 깻잎인 시소까지 준비했다. 재료를 한 데 모아놓으니 푸르른 채소와 대비되는 노란 호박꽃 덕에 눈이 즐겁다. 참 곱구나.



다른 과정 필요 없이 신선한 재료만 있으면 맛있는 튀김을 만들 수 있다. 튀김가루에 얼음물을 부어 농도를 옅게 준비해둔다. 탄산수를 사용해도 바삭한 튀김을 만들 수 있다.



잘 오른 기름에 반죽을 살짝 묻혀 튀겨냈다. 호박꽃 자체가 부드럽기 때문에 튀김옷을 얇게 해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얇고 반투명한 튀김옷을 입은 호박꽃과 재료들이 여름날 얇은 옷 입은 우리 모습 같아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메밀면 삶아 헹궈내고 쯔유로 간단하게 육수를 내어 시원한 냉메밀을 만들고 튀김을 곁들여냈다.



호박꽃에선 여리게 호박의 향과 맛이 난다. 호박의 자연스러운 단맛도 그대로 품고 있다. 튀김옷은 바삭하고 꽃은 부드러워서 몇 개라도 먹을 수 있는 맛이다. 냉메밀에 올려 함께 먹으니 따스한 튀김과 차가운 면의 조화가 재미있다. 시튀김으로 입을 개운하게 한 다음, 다시 한번 호박튀김. 다시 또 냉메밀을 후루룩. 이렇게 혀끝으로 여름을 느껴본다.



혹독한 계절을 보내는 중에도 작은 맛의 기억들을 쌓아간다. 햇살과 바람을 품은 제철 식재료를 즐기며 맛의 추억을 차곡차곡 보관하는 재미. 시간이 지나 무더웠던 올여름이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부지런하게, 조금 더 열심히 식사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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