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낮이 길어지고 태양의 고도도 많이 높아졌다. 그만큼 한낮의 공기도 뜨거워진다. 초여름의 햇살은 빛깔도 깊이도 봄과 다르다. 한층 더 눈부시게 쨍해진 햇빛을 보며 여름 문턱에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초목들은 따가워진 햇살 아래에서 쑥쑥 자란다. 짙은 초록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색이 캔버스 위에 덧입혀진다. 벼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밤꽃이 피기 시작한 뒷산 너머에는 낮달이 떠 있다. 푸르던 보리는 황금색으로 익어간다. 무밭에는 연보랏빛 무꽃이 점점이 피기 시작한다. 초여름이다.
밤꽃과 무꽃이 피는 초여름 풍경
계절은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으로도 찾아온다.
계절은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으로도 찾아온다. 이때쯤이 되면 어쩐지 완두콩 찌는 향부터 떠오른다. 여름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수확하는 작물, 완두. 이른 봄에 심는 완두는 늦봄이 되면 꼬투리를 통통하게 부풀린다. 갓 딴 완두의 깍지를 까면 잘 영근 완두가 알알이 박혀 있다. 반질거리는 완두콩 형제들이 옹기종기 모여 풋내 스민 연둣빛을 뽐낸다. 봄이라기엔 짙고 여름이라기엔 연한, 딱 그 사이의 색이다.
완두콩
콩이라면 다 좋아하지만 완두콩을 특히 좋아한다. 껍질째 그대로 쪄서 톡톡 까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씹으면 톡 하고 터지는 식감, 입안에 퍼지는 수분감, 특유의 단맛, 동그란 모양, 초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싱그러운 색까지, 모든 것이 좋다.
완두콩을 좋아하는 데는 추억도 한몫을 한다. 그 안에는 둥글둥글 행복한 기억이 스며 있다. 초여름이면 외갓집 마루에 앉아 할머니, 동생과 함께 찐 완두콩을 까먹곤 했다. 완두 꼬투리를 입에 넣고 앞니 사이로 꼬투리 끝을 잡아당기면 도르륵 콩만 입에 남는다. 그 재미에 완두콩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학교 급식 메뉴 인쇄물에 ‘완두콩밥’이 있으면 기쁨에 겨워 형광펜으로 표시했다. 밥에 송송 박힌, 잘 익어 쪼글쪼글 주름이 잡힌 완두콩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완두콩은 ‘이제 여름이란다’ 하고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이맘때의 소소하지만 즐거운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생완두콩과 찐 완두콩
오일장이 서던 날, 완두 한 망을 사서 집에 오자마자 손질을 시작했다. 콩깍지의 모서리를 손으로 누르자 톡! 하고 꼬투리가 벌어진다. 그 안에 실한 완두 알이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다. 당장 먹지 않을 분량은 까서 냉동실에 보관해두고, 나머지는 꼬투리 그대로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신 것처럼 찐 다음 한 김 식혀 톡톡 까먹었다. 고소하고 달큼해서 자꾸만 손이 간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하다가 찐 완두콩으로 콩국수를 만들기로 한다. 보통 콩국수 하면 메주콩으로 만든 뽀얗고 부드러운 모양새를 떠올리지만, 완두콩으로 만들어도 꽤 별미다. 찐 완두를 물과 함께 갈아 콩물을 만든다. 국수를 삶아 그릇에 담고, 콩물을 붓는다. 오이도 채 썰어 고명으로 얹는다. 보기에도 시원하고 풋풋한 완두콩국수 한 그릇이다.
초여름 그 자체인 완두콩국수 그릇 위로 환하게 부서지는 햇빛도 멋진 고명이 되어주었다. 면을 살살 저어 연둣빛 콩물에 적시고 한 젓가락 떠서 후루룩 먹는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순식간에 입안에 퍼진다. 메주콩으로 만든 콩물만큼 고소하진 않지만 부드럽고 달큼하다. 완두콩국수의 싱그러운 빛깔과 생생한 맛이 마음을 상쾌하게 돋워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완두콩과 함께 여름을 맞이했다.
여름을 상큼하게 맞이하는 법, 완두콩국수
완두콩, 물, 소금 혹은 설탕, 소면, 오이, 통깨
- 삶거나 찐 완두와 물을 믹서에 넣고 함께 간다.
물 대신 두유를 사용해도 좋아요.
- 취향에 따라 소금, 설탕으로 간한다.
- 국수를 삶아 그릇에 넣고 간한 콩물을 부은 다음 채 썬 오이, 통깨 등을 올린다.
차례차례 바뀌는 계절, 이 멋진 지금을 봐.
훈훈하고 싱그러운 책.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고플 때마다 꺼내 읽게 될 책이다. _김신회(에세이스트, 《가벼운 책임》 저자)
책을 읽다 보면 냉장고에 가까운 계절을 채우고 싶어진다. 나에게 수고스럽고 싶어진다. _임진아(삽화가, 《오늘의 단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