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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Sep 01. 2022

나는 왜 거절이 힘들까?

마음속에 맴맴 돌기만 하는 말들

"너는 정말 말을 안 들어, 징그럽게 안 들어!"

엄마는 나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곤 했다. 뭘 해도 속을 썩이고, 알아서 하는 일이 없다고 덧붙이시면서.


어려서부터 나는 참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고, 용케 살아난 덕분에 가끔은 엄마 덕으로 사는 것 같긴 하다. 그러니 응당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왜 나의 머리와 입은 따로 노는 것인지 '싫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의 모든 말에, 반대로 반응하고 싶었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말을 이기고 싶었던 걸까. 청개구리 심보를 사회에서는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심이 컸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는데. 나의 롤모델은 TV 드라마  커리어우먼이었던  같다.  부러지는 말솜씨에 정장이  어울리는, 날씬하고 예쁜 여주인공처럼. (아이고, 배야)


한편으로는, 일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후배들을 보면 마치 엄마가 나를 대했던 것처럼 그들을 비난했다. 왜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냐고, 내가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 줘야 하냐고. 상대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 회사 생활을 겪으며 나는 '악랄한 상사'로 변해갔다. 나의 선배나 동기와 갈등을 겪기도 하고, 후배들에게는 험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으니까. '그들이 나를 왜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팀장이 되었고, 팀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때 선택한 방법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을 배려해주고, 휴일을 보장해주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 등등. '너희들이 싫어하는 건 내가 다 할게, 제발 나를 욕하지 말아 줘.'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그렇게 1~2년 버티다 임신을 이유로 직장을 뛰쳐나가 버렸다.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실패자라고 스스로를 낙인찍으면서 '엄마'로서의 새 삶을 꿈꿨다. 그런데, 왜 때문에!!!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어디서든 눈치를 봐야 했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을 때에는 '남편에게 용돈 타서 쓰는 사람'이라는 시선이 너무나 싫었고, 다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작은 마을에는 출판사나 홍보 회사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으니 경력을 이어가는 건 힘들었다.


몇 년간에 걸쳐 이력서를 몇 백개는 썼던 것 같다. 글을 쓰거나 가르치는 일을 어렵게 구하게 되었을 때에는 '나도 사회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어렵게 주어진 기회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장의 목표가 되었다. '예전처럼 욕을 먹지 않겠어!'라고 굳게 다짐했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만 있었으니,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칠 수밖에.


지방의 작은 도서관에서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을 때였다.

"선생님은 아직 가르치신 경험이 없으시니까, 재능기부로 시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능기부요?! , 그럴게요."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잡지 기자로 글쓰기 스킬을 쌓고, 중앙부처에서 5년 동안 어린이 기자단을 꾸려본 나였지만, 그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경력 보유자에 불과했으니. 누군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세 번의 방학 동안 무료로 특강을 한 이후에야, 시급 몇만 원의 강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논술교사로 일을 할 때에는 가가호호 방문하며, 문지방을 넘을 때마다 어깨가 움츠러졌다. 누가 내 등을 묶어놓은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키워가야 하는 프리랜서 작가/ 강사로 일하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어디서는 '네! 그렇게 할게요.'라는 태도가 배어버렸다.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며 칭찬보다는 욕을 주로 먹어온 딸. 직장 선후배 사이에서 성격 나쁘다고 은따 당하던 팀장. 그 과거를 뛰어넘고 싶었던 나는, 프리랜서라는 불확실한 일을 반복하면서 '거절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가끔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입에서 '네!'라고 습관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나를 느낄 때면 스스로가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다.


이미 대답을 해놓고, 어떻게 다시 거절을 해야 할까? 반복하며 며칠씩 마음 졸이는 나. 그런 내 모습을 보다 못한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처음부터 못한다고 말을 해.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해."

아주 사소한 것들을 거절하지 못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왔고 결국 앓아누워버렸다. 그 사이에도 머릿속에는 '뭐라고 메시지를 보내지?'하고 끙끙거리고 있었으니까.


최근에는 위염으로 일주일 동안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지내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유튜브와 포털에 '거절하는 법'을 검색하면서 그걸 깨우쳐야 하다니. 그리고 오랜 생각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과거를 잘라내자. 이미 흘러가버린 나를 지워야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나를 그려놓지 말자.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겁내지 말자.

나는 타인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나에게만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여기서 한 스푼의 용기를 얹어보기로 했다.

'거절은 나쁜 것이 아니다. 흔쾌히 한 결정을 다시 뒤집는 것이 서로를 더 불편하게 할 뿐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알고, 그만큼만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솔직해지자.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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