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생충의 경계 : 쪽방살이
르포 아이템을 찾기 위해 한국일보 건물 일대를 돌아다녔다. 반지하 건물의 화장실을 보고 싶었다. 작년 제시어가 '화장실'이라 '화장실'로 기사를 써보고 싶었다. 나는 화장실로 나타나는 빈부격차 문제에 천착했다. 반지하 건물을 알아내기 위해 부동산으로 갔다.
공인중개사에게 직장 근처에 있는 반지하 방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저씨는 이 일대에 반지하는 없고 쪽방이 있다고 말했다.
'이게 왠 떡이냐'
한국일보 기사에서만 보던 쪽방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주소를 반드시 알아야했다.
"선생님, 쪽방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
아저씨가 알려준 주소로 가는 길. 남대문 시장 일대를 꽤 다닌 나에게도 그곳은 초행길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비좁게 난 계단,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네이버 지도 어플을 키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곳이 아저씨가 알려준 쪽방 건물이라는 걸 말이다. 나는 망설임없이 쪽방 건물을 들어갔다. 어둠 속으로 빨려간 기분이었다. 쪽방 건물은 기생충에 나오는 지하실처럼 '지하'에 위치해 있지 않다. 건물과 건물 사이 비좁은 곳에 있을 뿐이지 분명 지상에 있다. 그러나 쪽방 건물은 '지상에 있는 지하실'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핸드폰 플래시를 켜야 했다. 내가 원했던 '화장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화장실과 샤워실은 깨끗했다. 샤워실을 둘러보려고 하는데 주민이 '여기 왜 왔냐고 물어봤다. 나는 화장실 쓰려고 왔다고 둘러댔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화장실은 도처에 널렸는데 이곳까지 와서 무슨 화장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처럼 수압이 약한지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을 이용해보기도 했다. (깔끔 떠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야마 잡기 위해 쪽방 건물 화장실도 써본 나, 대단해! 겁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문을 닫고 산다. 그러나 이곳은 문을 열고 산다. 갑갑해서 그러는 거겠지만, 문을 열어도 가져갈 게 없는 게 본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건물을 순회하면서 이들의 집을 구경했다. 방마다 있을 건 다 있었다. 쪽방도 사람 사는 공간이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15인치 텔레비전 등 사람 사는 데 필요한 물건들은 빼곡하게 있었다.
계단을 발견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너무 높아서 20대인 내가 올라가기에도 위험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거주할 텐데. 그들이 걱정됐다. 2층은 그나마 나았다. 1층과 다르게 햇볕이 드니까. 다만, 밖에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계단이 그들의 이동권을 박탈한 건 아닐까? 결국 1층과 2층 주민의 거주 환경은 거기서 거기였다.
1층으로 내려왔다. 쪽방건물 입구에 사는 아주머니가 방충망을 닦고 있었다. 한치의 먼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꼼꼼하게. 아주머니가 창문 닦는 건 일상이다. 나는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쪽방촌에 사는 이들은 절대 청소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 있어서 그럴 지도. 창문에서 보이는 건 어두운 벽일텐데도 아주머니는 최선을 다해 창문을 닦고 있었다.
어둠이 지배하는 쪽방은 향긋한 체취를 허용하지 않았다. 쪽방 건물을 나와서도 문 앞에서 잠시 멍해있던 건 그곳의 냄새때문이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구역질을 유발하는 그 냄새. 처음엔 그 냄새때문에 건물을 들어갔다 나왔으니까. 박사장이 "기택씨에게서 지하철 1호선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던 것처럼 어느새 체취마저도 부자와 빈자를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또 다른 쪽방 건물을 발견했다. 이번엔 5층 건물이다. 한국일보 본사 건물 맞은 편에 있었다. 그 근처 일대는 재개발이 한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낡아빠진 건물같아 보였으나 이곳에 내가 원하는 뭔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건물에 들어갔다. 앞서 갔던 곳과 비슷했다. 내가 마치 기생충이 된 느낌? 차이점은 '화장실'이었다. 청소도 하지 않는 지 변기에 굳어버린 오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시각적인 역함이 올라왔다. 그래도 생각보다 첫 번 째 건물보다 두 번 째가 냄새는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건물이 방금 갔던 곳보다 냄새가 낫다고 말하니 같이 간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냄새에 익숙해진 거 아니에요?"
쪽방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의 냄새가 어떤지 아냐고, 이곳의 냄새가 익숙하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답을 얻었다.
오늘 만큼은 비현실적인 현실에 외면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