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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Dec 19. 2018

화해

엄마와 아빠가 돼지가 되어 버렸다. 부모가 돼지고기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치히로는 유바바가 일하는 노천탕의 직원이 되어 혹독하게 일한다.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가 되어버린 이유는 그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나지 않은 마을에 우두커니 식당이 있었다. 사람은 없는 데 음식은 넘쳐난다. 탐스럽게 생겨, 입에 물고 뜯고 맛봐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무엇에 홀린 듯 치히로의 부모는 식당에 놓인 고기를 우걱우걱 씹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로 신에게 벌을 받았다는 고전적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안 된다’는 단어에 반응하는 스위치가 DNA에 박힌 걸까. ‘우리는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는 자크 라캉의 통찰력은 내 친구의 학창시절에서도 빛이 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친했던 내 친구는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의 사생팬이었다. 깊고도 독특한(?) 팬 생활 때문에 어머니와 싸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친구의 어머니는 연예인 쫓아다닐 시간에 공부하라고 재촉했다. 친구는 공부가 싫어서 어머니의 말에 더욱 엇나갔다. 처음에는 친구도 김희철을 이렇게 좋아할지 몰랐다고 했다. 슈퍼주니어 노래 듣고 사진도 찾는 것으로 시작한 팬 활동이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건 잘못했다. 그전에, ‘친구가 슈퍼주니어를 좋아했던 마음을 무조건 잘못됐다고 꾸짖는 게 옳은 건가‘ 하는 물음이 부쩍 든다. 오히려 친구의 어머니가 슈퍼주니어 앨범 CD를 먼저 사줬다면, 친구는 팬 생활을 하면서도 동시에 열심히 학교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반항하지도 않고, 숱한 다툼으로 모녀 사이가 멀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행동을 금지하니 욕구는 커졌고 주체할 수 없게 됐다.
  
태초부터 인간은 욕망을 부정하고 억눌러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2000년간 금욕주의는 깨질 수 없는 대세였다. 하지만 인간은 욕망과 맞서 번번이 졌다. 인간의 본성의 일부이기에 부정할수록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부터 인간은 욕망을 이길 수 없음을 증명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욕망과 ’화해‘ 하는 데 있다. 적대시하고 싸워 이기려고 했던 욕망을 보듬어주고 긍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예수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면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먹었을까? 해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선악과의 나무는 그들의 시선에서 빗겨 갔을지도 모른다고 감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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