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O와 노래방에 처음 간 게 아마 중1 때였을 것이다. 그때는 노래방이 청소년 출입 금지 업소였지만 한국 대중 음악을 사랑하는 어린이 아니, 청소년으로서 노래방을 체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학교 근처의 노래방에서 그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겠다고 여길 정도의 강심장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은 학교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그렇다고 집에서 아주 멀어서는 안 되는 곳을 타깃으로 삼아 원정을 떠났다.
하교 후 우리는 안국역 개찰구에 납작한 마그네틱 전철표를 넣고 대화행 열차를 탔다. 이 정도면 학교에서 꽤 멀어졌다고 생각한 우리가 택한 목적지는 홍제역이었는데, 안국에서 고작 네 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대개 집 가까운 곳에 배정되었으므로 그 무렵 열네 살이란 "너 인마 혼자 지하철 타 봤어?" 따위의 공격에 기가 죽기도 하는 나이였다. 따라서 안국에서 홍제까지, 그것도 청소년 출입 금지 업소인 노래방을 가기 위한 우리의 여정에는 자못 진지하고 비장한 데가 있었다.
몇 번 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탈을 결심한 우리는 몇 군데 노래방 중에서 '우리를 받아줄 것 같은' 곳이 어디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 논쟁에서 누가 이겼는지 몰라도 어쨌거나 우리가 선택한 곳은 '황제 노래방'이라는, 반지하에 위치한 노래방이었는데 이번에는 누가 먼저 내려갈 것이냐로 다시 갑론을박을 벌였다. 우리는 둘 다 세 살은 더 먹어 보이는 어린이 아니, 청소년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열네 살이었다. 학생들은 못 들어온다는, 이런 데 오면 안 된다는, 너희 어느 학교 다니냐는 말을 들을까 봐.
가위바위보를 했던가, 어쨌거나 키가 더 컸던 O가 먼저 발걸음을 내딛고 내가 뒤를 따랐다. 그때 안에서 문이 열리고 주인 아주머니가 "학생들 어서 와!" 하며 환대해 주기까지의 시간은 또 얼마나 길었던지. 우리는 만 원을 오백 원 동전으로 바꿔 바구니에 담은 후 방으로 들어가 , 부르려고 적어 온 노래를 최선을 다해 불렀다. 변성기였으니 온전하게 올라가는 노래는 드물었지만 우리는 스무 곡의 노래를 당당히 부른 뒤 노래방을 나섰고, 우리의 용기를 치하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학생들 또 와~"라는 말을 훈장처럼 달고 돌아서 다시 전철을 탔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이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 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