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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진한 Aug 26. 2022

스물엔 스물의 벚꽃

“선생님은 꿈이 무엇이셨어요?”

     

강사 시절 더러 받곤 했던 질문인데 늘 한마디로 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는데 지금은 우리 앞에 앉아 학원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느냐는 것 같기도 하고, 가고 싶은 대학은 있지만 정작 꿈은 없는 K-고딩의 진지한 질문 같기도 했다. 하지만 대답이 어려웠던 중요한 이유는 실제 나에게 꿈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꿈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 좀처럼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꿈은.. 잘 모르겠는데, 하고 싶은 일은 많았어.”     


보통은 이렇게 대답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꽤 긴 시간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꿈이라 한다면 아마 내 꿈은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때에 이르기까지, 학교는 물론 학원에서도 나는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물론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선생님들도 없지 않지만, 나는 좋은 선생님들의 햇빛을 훨씬 더 많이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오, 그럼 꿈을 이루신 거네요?”     


남들보다 군대를 늦게 다녀와 두 해 임용을 준비했지만 떨어졌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기에, 몇십 대 일이었던 경쟁률을 탓할 수는 없다. 어쩌다보니 그 시절 공부를 밑천으로 삼아 학원가로 나와 고등학생을 가르치며 12년 넘게 학원 밥을 먹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안정과 사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생각할 때마다 임용을 일찍 포기하고 학원 선생이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몫은 부끄럽지 않게 다하려 노력했으니, 꿈을 이루신 것 아니냐는 말에 손사래를 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럼 또 뭐 하고 싶으셨는데요?”     


하고 싶은지와 관계없이 20대 이후에는 그냥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대학을 갔다면 졸업을 해야겠고, 남학생이라면 군대도 다녀와야 한다. 연애는 좋은 일이지만 연애가 꿈일 순 없다. 비혼주의가 아니라면 결혼도 그냥 해야 할 일일 뿐, 그게 꿈일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을 많이 하고 싶었어. 그래서 20대 때는 엄청 다녔지. 버스도 타고, 기차도 타고, 걷고 또 걷고. 그땐 휴대폰은커녕 인터넷도 잘 되어 있지 않을 때라 시골 마을에 들어갔다가 차를 놓치면 몇 시간을 걷거나 아예 자고 와야 할 때도 있었어.”     


이미 가족들과 다른 나라를 다녀온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흥미롭게 들어 준 이유는 이런 말들을 그 뒤에 붙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근데 여행은 혼자 하는 거야. 나는 20대 땐 여유가 없어서 국내 여행만 다녔고,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이 처음이었어. 여유가 있다면, 아빠 엄마께 등록금은 달라고 말씀드려. 그리고 열심히 알바 뛰고 돈 모아서 여행 가, 혼자. 조금이라도 일찍 다른 세상을 보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더 넓어지고 깊어지면 좋겠어.” 

   

“그럼, 못해서 후회되는 일은 없으세요?”     


돌아보면 큰 꿈도 없었지만, 딱히 후회되는 일도 없긴 했다. 대학 때 문학 공부도 해 봤고, 노래 모임에서 공연도 해 봤고, 답사 모임은 직접 만들기도 했다. 연애도 했고, 운전면허도 땄으며, 책방도 많이 다녔다.    

 

“대학가요제엘 못 나가 봤네.”     


이 말을 비장하게 하면 아이들은 대개 웃는다. (요즘은 대학 가요제가 뭐냐고 묻기도 하지만)    

  

“대학가요제는 대학생이 아니면 나갈 수가 없었거든. 난 음악을 좋아했어도 딱히 가수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지만, 대학가요제에 예선 탈락 한 번 해 보지 못한 건 후회 돼. 딱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거든. 그래서 이제 전국노래자랑 화성시 편을 하면 한 번 나가보려고.”     


지금은 이런저런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있어 얼마든지 예선 탈락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 세대에게 대학가요제는 대학생들의 특권이었다. 도전해보지 못한 것이, 그래서 예심에서 떨어진 추억 하나 없는 것이 나는 지금도 그렇게 아쉽다. 딱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말을 나는 늘 그렇게 해 왔다.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시작한 말은 아니지만 이 정도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은 이렇게 말하는 학생도 있다.     


“지금은 그럼 공부를 해야 할 때겠네요.”

“물론이지. 내가 지금 아니라고 하면 내일 엄마가 나한테 전화하실 거 아니냐?”  

   

많은 것이 변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입시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막막해하고 있다는 것, 한편으로는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또래 이성 친구의 옆모습을 보며 흔들리는 여린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는 것. 하지만 ‘벚꽃놀이는 내년에 대학 가면 실컷 할 수 있다’, ‘연애는 나중에 질리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을 그야말로 실컷, 질리도록, 듣는다는 것.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는데, 그렇게 마음이 떠 있다 싶으면 간식 싸 가지고 가서 사진도 찍고 두어 시간 놀다 와. 지구가 망하지 않으면 벚꽃은 내년에도 피긴 피겠지만, 그건 스무 살의 벚꽃이야. 열아홉의 벚꽃은 열아홉에만 피는 거야. 내년에 올해의 벚꽃을 볼 수는 없어. 단, 엄마께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면 안 돼.”     

이런 말을 해도 항의 전화 한 번 받은 일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은 벚꽃놀이를 가지 않았거나 엄마에게 나의 말을 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을 해 줄 때마다, 인생의 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이 자기들의 계절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학원 선생으로서 느끼는 자책을 조금은 덜어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겐 아이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짐이 하나 더 있다.     


아이들 앞에서는 멋있는 척 말했지만, 나야말로 나의 이 시절에 놓치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을 것인지. 지금의 나에게 대학가요제는 무엇이며, 벚꽃은 어디에 피어있는지, 어떻게 해야 놓치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오 년 전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나의 선생님은 “인생의 가장 좋았던 시기가 40대였던 것 같다.”고 축복해 주셨다. 축제가 인생의 봄에만 열리는 것은 아닐 것이어서, 나는 창밖을 한 번 내다 본다. 


- 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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