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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진한 Aug 28. 2022

윤종신, 첫 콘서트

- 1992년 크리스마스

어떤 노래를 처음 들은 순간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린 시절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는 본방 사수 프로그램이다 보니, 무한궤도의 보컬 신해철이 <그대에게>를 부르던 모습은 잊히지가 않는다. 이승환의 <천 일 동안>은 고3 여름 어느 날 정독도서관에서 처음 들었다. 테이프를 사서 비닐을 뜯고, 워크맨에 끼워 넣어 플레이 버튼을 누르며 테이프의 가사지를 읽었던 기억이 선하다. 대학 때 학교 앞 레코드점을 지나다가 성시경의 <처음처럼>을 처음 들었다. 세상에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니, 하며 노래가 끝나자 곧바로 들어가 CD를 샀다. 그런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그 순간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 난다. 

    

중1 때였다. TV에서 무슨 마라톤 대회를 해 주는데 도대체 열세 살 청소년이 그걸 보면서 왜 집안을 뛰어다녔는지 알 수 없지만, 암튼 그때 문지방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한 달 정도 학교를 가지 못한 적이 있다. 원래도 라디오를 많이 듣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하루 종일 라디오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깁스를 하고 지내던 어느 날 라디오를 켰는데, 미성의 남자 가수의 목소리로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함께 노래는 끝나고, 애석하게도 방송도 끝이 났다.


요즘은 대개의 방송국들이 선곡표라는 것을 공지하고 있어서, 중간부터 들은 노래라 해도 그게 어떤 곡인지 찾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땐 다시 듣기나 선곡표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거나, 방송국에 전화를 하면 혹시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니, 노래가 끝나고 DJ가 다시 한 번 노래 제목을 알려주지 않으면 다시 들을 때까지 알 방법이 없었다.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혹시 그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꽤 오래 듣지 못하다가, 몇 달 후에야 그 노래가 공일오비의 <텅 빈 거리에서>라는 곡임을, 노래를 부른 객원 가수가 윤종신이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테이프를 사서 듣고 또 들었을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홍보도 제법 했다. 윤종신은 이듬해 <처음 만날 때처럼>을 타이틀로 솔로 1집을 냈고, 공일오비 2집에서 <친구와 연인>을 비롯한 몇 곡을 불렀다. 그리고 1992년 <너의 결혼식>이 실린 솔로 2집이 나왔고, 나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윤종신”이라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윤종신이 누군데?”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 소리를 얼마나 하고 다녔는지 어느 날 마주친 영어 선생님께 “야, 너 윤종신이가 단독 콘서트 한다는데 가야 하지 않겠어?” 라는 말을 듣기에 이르렀는데, 콘서트 소식을 몰랐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당연하죠.” 하고 말해 버렸다. 용돈을 모았는지 어머니께 책을 산다 하고 돈을 타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돈을 마련해, 교보문고에 가서 티켓을 샀다(콘서트 티켓을 교보문고에 가서 샀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땐 많은 공연 티켓을 교보문고에서 판매했다). 윤종신도 나도 첫 콘서트였다.


1992년 크리스마스.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나는 소중한 티켓을 두툼한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세상 뻘쭘한 모습으로 혼자 명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이란 곳을 찾아갔다. 3시, 6시였던가. 어쨌든 2회 공연이었는데 나는 1회를 예매했다. 자리가 정해지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1시 정도까지 가면 그래도 앞에서 볼 수 있으리라 여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나는 공연장에 이르러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했다. 얼마나 큰 공연장일까, 이 사람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싶게 줄이 길었다. 윤종신이 유명하지 않은 건 우리 학교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1시가 다 되어도 줄이 좀처럼 줄지 않았고, 결국 나는 들어가지 못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공연 관계자인 것 같은 사람이, 기다리면 2회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2회를 예매한 사람이 1회에 들어간 것인지, 표를 너무 많이 팔았던 탓인지, 아무튼 뭔가 문제가 있었다. 일행 없이 혼자였던 열다섯의 나는 결국 화장실도 못 가고 다섯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폭설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2회 공연도 제법 늦게 시작했는데, 2회마저도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밖에서 시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아마 지금이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의자가 없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책상다리를 하고 카페트 바닥 위에 앉아야 했다. 그래도 들어온 게 어디냐 하며, 초대형 스피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리는 저리고, 귀는 찢어질 것 같았지만, 공연의 모든 노래를 따라부르며 윤종신과 나의 첫 콘서트를 맘껏 즐기고 나왔다. 콘서트는 이렇게 입장한 회차에 못 들어가기도 하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팬들끼리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즐기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고등학교 때 열린 윤종신의 다음 콘서트에서 교정되긴 했는데 완전하지는 않았다. 분명 좌석이 있는 소극장이었는데도, 늦게 온 사람들은 입석이라며 서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땐 그냥 그러기도 하나 보다 하던 시절이었다.


열 시가 넘어서야 공연이 끝났고, 거리엔 여전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콘서트의 기운에 젖은 채, 열다섯의 나는 윤종신 노래를 부르며 한 시간 넘는 길을 걸어서 돌아왔다. 어머니는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목이 쉰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하셨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 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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