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 지연, 혈연은 어딜 가도 만국 공통?
항공편 직항으로 꼬박 12시간이 걸리는 이탈리아에 왔음에도 오히려 더한 한국적인 사회를 이곳에서 몸소 느낀다. 내가 교민 커뮤니티에서 100%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상황이 갖춰졌더라면 이런 고민과 생각은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한국인 base를 벗어나면 타국의 구직 시장에서는 대단한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것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또한 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난 사람도 아니다.) 타국에서 초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할 때 여러 가지 다양한 네트워크를 무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EU 국가 중 금년(2020년) 국가부채율이 155%를 초과할 거라 예상한 이탈리아라면 말이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기업 공개채용 같은 채용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네트워크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거나 혹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실 분을 만나야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찌 본다면 굉장히 기회주의적인 만남만을 고려하는 건 아닌가 가끔 스스로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처음 이탈리아와 인연을 만들어가면서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면 늘 나를 자신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나에게 다가왔던 사람들이 많았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귀인인 Sole 언니(이모님)는 어떠한 의도 없이 이탈리아어 학원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워홀 결정 전 그저 이탈리아어 공부가 좋아 열심히 학원을 다닐 때였고, 이모님은 자녀분의 방학 때에 맞춰 같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언어를 잘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로 잠깐 학원을 다니셨을 때였다.
Sole 언니는 개강 첫날 내 옆자리에 바로 앉고서는 수업 때 내용을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나는 언니의 질문을 틈틈이 답하면서 숙제도 도와드리고 그랬었다. 그때 내 모습을 좋게 보셨는지 밀라노로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워홀 시작 후 어느 정도 정착한 후 바로 연락드렸다. 물론 어떠한 기회를 바라고 연락을 드린 건 아니었고, 내 또래가 아닌 나보다 어른인 분을 해외에서도 가까이하고 싶어서였다.
가까이하고 싶다는 나의 순수한 마음이 전해졌던 것인지 이모님은 인생선배로서 나에게 여러 가지 insight를 주셨고, 뒤이어 나의 해외 정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그 일, 내 이력서를 자신의 남편 분께 전달해주셨다. 정말 내 손모가지 걸고 말하겠지만 나는 해외 정착을 목표로 이탈리아에 온 게 아니었고, 그냥 기회가 되면 일해보고 싶단 마음뿐이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서 같이 일했던 직장 선배들의 추천으로 감사하게도 여러 분야의 회사와 동종 업계에서 많은 이직 제안들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리고 이 얘기가 생각난 이유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일련의 모든 행동들이 근시안적으로는 그 순간의 행동으로 끝나더라도 사실 그게 절대 그렇지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사회 초년생으로 사파리 같았던 그 회사에서 버틸 때 나의 자존심은 지하 바닥을 뚫고 한없이 낮아 스스로 잘하는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뛰어나고 대단한 역량의 직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회사와 팀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내 역량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것은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봤던 직장 선배들이 (심지어 같은 팀도 아니었던 옆팀 선배들이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에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자신들의 거래처에 소개해주셨고, 잠시나마 나의 자존심 회복 및 나의 회사생활을 긍정적으로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인간관계, 네트워크는 한국땅을 벗어나도 내가 어느 사회조직에 흡수되는 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이탈리아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만 나의 평소의 모습과 태도로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런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 나의 평판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그 평판이 나만의 인간관계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좋은 사람 혹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는 법칙을 깨닫는다면, 어딜 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학연, 지연 등 인맥에서 오는 긍정적인 결과만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