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 필요해!
10여 년 전부터 시작한 시사 교양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줄여서 ‘세바시’라고 불리는 강연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끊임없이 이어가고자 하는 강연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청중에게 공감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이즈음 필자가 근무하는 C고등학교 학생회에서 강연 프로그램을 모방한 ‘세바청 15’(세상을 바꾸는 청소년 15분)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4주의 기간 동안 매주 학생 강연자와 청강자를 신청받아 방과후에 진행한 것으로 프로그램의 취지도 좋았지만,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소수의 학생이 아닌 전교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학생회의 동의를 얻어 학교와 학생회 공동 주최로 교육과정 내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얼마 전 ‘이야기 리터러시’를 주제로 한 강연 중 오늘날 사람들의 삶이 마치 1분짜리 유튜브 쇼츠(shots)와 같이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을 사로잡을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영상의 전후 맥락은 생략된 채 빛나는 순간만이 편집되어 공유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인식하는 방식도 파편화된 단순 경험들만 나열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빛나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프고 좌절하고 고민하고 극복하는 삶의 조각들이 모여 진정한 나의 이야기가 된다. ‘진주가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경험의 조각들을 엮어 의미화시킬 수 있어야 ‘삶’이 ‘보배’가 될 수 있다. 즉, 내가 내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어야 타인도 내 삶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5월 26일(목) ‘세바청 15’, 세상을 바꾸는 C고등학교 청소년들의 삶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진로·인성’을 주제로 학생 강연자들이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을 친구들 앞에서 15분간 이야기한다. 지난주까지 학생 강연자 신청을 받았는데, 무려 40여 명의 학생들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지원 신청서의 주제란에는 ‘우울함을 통해 성장하는 방법’부터 ‘이공계 학생이 지녀야 할 윤리적 책임’까지 진솔한 경험담뿐만 아니라 직업윤리 등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교실 수업 장면에서는 주로 수용자로서 교과서와 교사의 말을 읽고 듣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던 학생들이 강연자로 나서서 자신의 스토리를 펼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화로서 ‘세바청 15’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와 삶의 조각을 엮어내는 통찰력을 겸비한 학생 강연자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경상일보 2023년 3월 교단 일기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