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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정 Aug 23. 2024

노르망디 인상파의 길 (하)

서현정의 하이엔드 월드(High-End World) 3

부드러운 바다 바람에 새하얀 돛이 나부끼는 곳, 노르망디 풍 슬레이트 지붕에 창가마다 꽃이 늘어서있는 곳, 옛 항구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상점과 음식점이 늘어서 있는 곳, 그곳은 인상파 화가들이 햇살을 찾아 모여들던 아름다운 항구 도시 옹플뢰르(Honfleur)이다.


노르망디풍 건물이 늘어선 옹플뢰르 항구 (ⓒ RELAIS & CHATEAUX)


노르망디풍 건물이 늘어선 옹플뢰르 항구 (ⓒ프랑스관광청)

아직도 그대로인 거리 모습은 이곳을 사랑했던 많은 예술가들처럼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옹플뢰르를 대표하는 화가는 인상파의 선구자로 불리는 외젠 부댕(1824~98)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외젠 부댕(Eugene Boudin)은 르 아브르(Le Havre) 등 인근 도시를 돌며 다양한 해변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가벼운 캐리커처를 그리던 클로드 모네(1840~1926)에게 풍경화를 그리도록 권한, 모네의 스승이기도 하다.


해안을 조금 벗어난 곳에는 모네와 부댕이 사랑하던 그들의 은신처, 라 페름 생시메옹(La Ferme Saint-Simeon)이 있다. 쿠르베(Gustave Courbet), 시슬리(Alfred Sisley) 등 동료 화가들과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67)도 영감을 얻기 위해 즐겨 찾던 곳이다.


휴식을 취하기 좋은 생시메옹 정원 (ⓒ RELAIS & CHATEAUX)



녹음이 우거진 생시메옹 (ⓒ RELAIS & CHATEAUX)

이곳을 찾을 때 마다 부댕은 '오~생시메옹!'이라는 감탄사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이엉 지붕으로 된 소박한 농가였지만 그들은 이곳에 모여 예술을 이야기하고 노르망디 해산물과 사과술 칼바도스(Calvados)를 함께 즐겼다.


화가를 이해했던 주인은 방값을 내기 어려운 화가들에게는 그림을 대신 받는 것으로 그들을 지원했다. 현재 생시메옹은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최고의 호텔로 럭셔리 부띠끄 호텔 연합인 를래앤샤또(Relais & Chateaux)의 회원으로 영화 배우 소피 마르소를 비롯해 프랑스와 세계적인 명사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다. 과거의 낭만은 그대로 남아 인상파 화가들처럼 여기서 자신만의 영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때 그들이 즐겼던 해산물과 칼바도스를 준비하는 레스토랑에 휴식을 위한 최고의 스파도 더해졌다. 만일 이곳에 머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면 생시메옹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해안 호텔, 라 쇼미에르(La Chaumiere)를 이용해도 좋다. 방 8개의 작은 호텔이지만 노르망디 해안의 풍광과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생시메옹의 레스토랑 (ⓒ RELAIS & CHATEAUX)


생시메옹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찾을 다음 방문지는 작은 어촌 마을 에트르타(Etretat)이다. 코끼리 모양의 바위로 유명한 이곳은 석회석 절벽이 깎아지른 듯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곳이다. 푸른 바다에 새하얀 모습의 바위는 수많은 화가들의 눈길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모네와 부댕은 물론 쿠르베, 마네, 세잔느, 들라크루아 등이 이 바위와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에트르타 해변의 코끼리 바위 (ⓒ Claude Coquilleau - Fotolia.com)


시간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해안의 모습은 인상파 화가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감동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모파상(Guy de Maupassant), 모리스 르 블랑(Maurice Marie Emile Leblanc) 등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르 블랑의 명작 추리 소설 『괴도 루팡』이 탄생한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또 방문할 곳은 에트르타나 옹플뢰르와 멀지 않은 또 하나의 해안 도시 르 아브르이다. 이곳에서 '인상파의 길'은 마무리된다. 르 아브르는 2차 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었지만 현재는 훌륭하게 복구돼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로 지정됐다. 그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이곳이 특히 '인상파의 길'의 종착점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네가 르 아브르 해안의 안개 낀 풍경을 보고 '인상, 해돋이'라는 명작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통해 인상주의는 마침내 그 이름을 얻었다.


르아브르의 석양 (ⓒ Patrice Le Bris)


해지는 시간,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에서 칼바도스나 앱상트(absinthe) 한 잔을 주문한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해안의 빛과 색채를 바라보며 지난 여정을 돌아본다. 배가 고프면 노르망디 소스라 불리는 화이트 소스를 얹은 가자미 요리를 곁들여도 좋다. 메밀로 만든 크레이프, 갈레트(galette)도 칼바도스와는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 이 글은 2015년 1월 21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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