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정의 하이엔드 월드(High-End World) 5
발칸 반도 북서쪽의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예전에는 유고슬라이바 연방이었지만 1991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와 함께 독립했다. 슬로베니아는 약 2만㎢, 인구 200만명 정도의 작은 나라이다. 그래서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잠시 들르는 나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곳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블레드 호수가 있다. 그림 같은 호수의 작은 섬에 성당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포스토이나 동굴도 유명하다. 길이만도 20㎞에 달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석회석 동굴이다. 빛이 없어 눈은 퇴화되고 없지만 인간과 같은 피부색을 가졌다고 알려진 '인간 도롱뇽'도 볼 수 있다. 워낙 동굴이 길어 꼬마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수도인 류블라냐도 빼놓을 수 없다. 중세시대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로 유럽의 많은 여행지 중 최근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강변을 걸어 류블라냐 성에 올라가면 붉은 지붕으로 가득 찬 도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달리며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알프스 산자락에 있어 다양한 높이의 산지에 물 맑은 강과 호수가 많은 이 나라는 '동유럽의 스위스'라고도 불릴 만큼 빼어난 모습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슬로베니아에 숨겨진 보석 같은 두 곳도 함께 방문해보길 바란다.
그래드 오토첵은 크르카 강의 작은 섬에 자리잡은 중세시대 성을 개조한 호텔이다. 1252년 처음 지어져 르네상스 시대에 증축되었으며 현재에도 과거의 성벽과 장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호텔 앞쪽에는 잔잔하게 흐르는 에메랄드 빛 강물에 백조와 새들이 노닐고 다양한 수종의 오래된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아침 일찍 따뜻하게 준비된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강변을 산책한 후 그날의 일정에 맞추어 블레드 호수나 포스토이나 동굴을 방문한다. 저녁이 되면 돌아와 슬로베니아가 자랑하는 화이트 와인과 함께 최고의 서비스로 제공되는 현지 음식 정찬을 따뜻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 즐긴다. 완벽하게 중세의 성주가 된 느낌이다.
켄도브 두보렉은 슬로베니아 산악지대 속에 자리잡은 작지만 기품있는 장원(莊園)이다. 짙은 녹음에 신선한 공기, 소박한 슬로베니아의 농촌 마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켄다(Kenda) 가문의 장원이라는 뜻을 지닌 켄도브 두보렉 이름 그대로, 이곳의 영주였던 켄다 가문이 대를 이어 유지해온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곳이다.
가족의 이름이 붙은 11개 객실에는 과거에 가족들이 쓰던 손으로 만든 침대와 가구들도 남아있다. 19세기 앤티크 가구에 이드리아지역의 핸드메이드 레이스,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붉은 벨벳으로 장식된 실내는 따뜻한 고귀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숙박객을 위한 레스토랑에서는 매일매일 다른 현지의 신선한 재료들로 이드리아 지방 전통 요리를 정성껏 만들어낸다.
대도시의 복잡함을 잠시 잊고 여유롭고 고요한 녹음 우거진 전원에서 역사의 한 장면에 빠져보는 특별한 경험이 가능한 곳들이다.
* 이 글은 2015년 2월 11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