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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정 Aug 23. 2024

세계 미식계의 신성 '벨기에'

서현정의 하이엔드 월드(High-End World) 40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벨기에 사람이며 세계의 시민이다(I am a Korean born, a Belgian man, and a citizen of the world)’. 벨기에에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상훈 드장브르(Sang-Hoon Degeimbre)의 이야기이다. 상훈 드장브르의 레스토랑 레르 뒤 땅(L’air du Temps)은 브뤼셀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나무르(Namur) 교외에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상훈 드장브르는 5살 때 입양된 한국 출신 입양아이다. 벨기에서 음식을 배우고 와인에 대해 공부하고 현재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지만 언제나 자신의 또 하나의 뿌리가 한국에 있음을 있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프랑스가 독점해오던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과 미식계에서 최근 프랑스를 넘어서는 활약을 보이는 나라들이 있다. 첫번째는 스페인이고 그 다음을 꼽는다면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등이다. 이 나라들이 활약을 보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를 하나 꼽는다면, 새로운 요소의 과감한 도입과 창조성이다. 전통에 안주하며 과거의 영화를 고수하는 프랑스보다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음식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한국 음식, 특히 고추장, 간장 등 한국의 발효 장도 과감하게 이용하는 상훈 드장브르의 요리는 이러한 최신 트렌드에 그대로 어울린다.


상훈 드장브르가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 한국 음식을 강조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입양아들이 그러하듯 오랫동안 한국은 그의 삶에 잊혀진 부분이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한국에 초청된 몇 번의 중요한 방문이 큰 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한다. 레스토랑과 함께 마련된 그의 연구소에서는 한국의 장과 식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요리를 계속 고안하고 다양한 채널로 한식 홍보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의 레스토랑 음식을 맛보면, 한식을 응용한 음식의 새로움과 그 조화의 뛰어난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레르 뒤 땅이 선사하는 놀라움은 한식과의 조화 만이 아니다. 레스토랑과 함께 마련된 방 5개의 작은 호텔, 연구실, 그리고 레스토랑에 직접 식재료를 공급하는 농장 겸 정원이 농촌 한가운데에 놀라운 전경을 만들어낸다. 뫼즈 강변의 에스베(Hesbaye) 스타일이라는 건물은 현지의 전통 농가 건물을 따라 지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현대적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레스토랑의 이름에서도 그 뜻이 나타나듯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완벽한 레스토랑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는 것. 하지만 그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음식은 저온조리법 수비드(sous-vide)는 물론 이머젼 히터, 초음파까지 최고의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다.


음식의 수준에 비해 저렴한 가격도 놀랍다. 가볍고 편하고 행복한 점심식사를 주제로 하는 시그네쳐 코스 5 보울(bowls)은 1인 65유로이다. 양은 적지만 아름다운 그릇에 담긴 5코스 요리와 그 앞의 어뮤즈 부쉬(amuse bouche), 프티 포(petit four)까지 더해져 절대 가볍지 않게 나온다. 서유럽의 일반적인 식사 가격을 생각하면 작품 같은 요리와 최고의 서비스, 아름다운 레스토랑에서 경험하는 식사 가격으로는 놀랄 만큼 저렴한 것이다. 풀코스 테이스팅 메뉴 가격도 합리적이다.    


벨기에에는 레르 뒤 땅 외에도 훌륭한 레스토랑이 많다. 또 하나 꼽을 곳은 브뤼셀 서쪽 겐트(Gent) 인근의 호프 반 클레브(Hof van Cleve). 피터 구센(Peter Goossens) 셰프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다. 1992년 시작된 레스토랑은 2005년 미슐랭 3스타를 받았으며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탑 50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어 왔다. 이곳 역시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간트 교외의 전원에 오래된 농가를 현대적으로 개조해 만들었다. 모든 식재료는 현지 생산자들에게 엄선하여 구입하고, 실내를 장식한 미술작품과 가구, 식기도 벨기에 전문가들이 손수 만든 것을 이용한다. 전통을 기본으로 하되 모든 음식들은 세계 다양한 나라 요리의 요소를 과감하여 도입하여 현대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든다.


따뜻한 전통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 마련된 최고의 기술과 창조적인 모던함. 벨기에 레스토랑들이 추구하는 세계이다.



* 이 글은 2015년 10월 28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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