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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포토그래퍼의 말할 수 없는 비밀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by 김연정


오늘날 부캐의 창시자가 아닐까?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의 전시 소개 글을 보면, '미스터리 포토그래퍼'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약 15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촬영하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게다가 직업은 포토그래퍼와 전혀 상관없는 보모였다. 비비안 마이어야말로 오늘날 부캐라는 개념의 창시자가 아닐까 싶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전문 포토그래퍼로 일한 경험도 없지만, 그녀의 사진은 유명 작가들의 사진과 비견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니까.


입장하자마자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오던 사람들의 증언은 일치했다.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는 것과 "언제나 카메라가 목에 걸려 있었죠."라는 말. 사람들 말처럼 그녀는 언제나 촬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하고, 가족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비안 마이어는 외롭지 않았을 것 같다.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을 마주하고, 세상을 탐험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야말로 그녀가 사람, 세상과 소통하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음이 틀림없다. 이해되지 않는 건, 왜 그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해도 그냥 취미로만 그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양은 말할 것도 없고, 실력을 보아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비밀'처럼 이 많은 사진을 꽁꽁 숨겨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사진은 촬영한 그녀의 몫이기에 공개하고 말고는 그녀의 자유지만, 말년에 생계가 어려워 사진을 접어야 했다는 사실이 슬펐다. 본업이 따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사진을 많이 남겼다는 건 사진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일 거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을 끝까지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비비안 마이어가 포착한 멋진 순간

셔터를 누를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는 찡그리기도, 미소 짓기도, 당황하기도 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그런 모든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정제되지 않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보모로 오래 일하면서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서인지 아이들의 모습을 잘 포착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는 아이의 손이나 부모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향하며 눈물 흘리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보통 아이 사진이라고 하면, 방긋 웃고 있거나 귀엽고 예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인데 그렇지 않아서 더 눈길이 갔다.



비비안 마이어는 카메라를 들고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는데, 당시만 해도 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그녀의 행보는 꽤나 대담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카메라와 사진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나 좋아했고,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거침없이 나아갔으리라.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면,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때로 우리가 놓치기 쉽거나, 주목하지 않는 것들에까지 시선이 향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사진을 보며, 비비안 마이어는 '이런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사진을 보며 자연스럽게 비비안 마이어의 마음에 동화되었다고나 할까?




셀피(Selfie)의 원조

자신의 삶을 극도로 비밀리에 붙여온 그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셀카는 많이 남겼다. 거리의 쇼윈도나 거울에 살짝 비친 모습, 혹은 그림자로 자신을 표현했는데 사진 감성이 정말 좋았다. 오늘날 셀카를 찍으려는 분들도 많이 참고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녀와 함께 만드는 특별한 시간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면 굉장히 무뚝뚝했을 것 같지만, 아이들과 굉장히 잘 놀아주던 보모였다고 한다. 아이들과 동네 연극을 기획하기도 하고, 꽃과 곤충을 관찰하는 가 하면,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과 함께 사진 여행도 떠났다고 한다.

보모로 일하며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크면 작별해야 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사진으로 더 열심히 기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업이 따로 있었지만, 예술로 자신의 삶을 채웠던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즉각적인 보상이나 반대급부 없이 흠뻑 빠질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내게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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