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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윤 Dec 27. 2018

[1m²인터뷰]포 잡 허슬. 래퍼 '렐릭'

독고다이. 2차 세계대전에서 카미카제—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자살공격을 수행한 일본 특공대(特攻隊 / とっこうた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홀로 독(獨) 자와 굳을 고(固) 자를 쓰며 '홀로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홀로 '독(獨)'은 개를 뜻하는 부수(犭)로 만든 형성문자다. 개가 모이면 싸우기 때문에 한 마리씩 떨어뜨려 놓는 행위에서 이 한자가 탄생했다.

여기 한 독고다이가 있다.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며 방에서 묵묵히 비트를 찍고 가사를 쓴다. 자신을 타인과 조금 떨어뜨려 놓고 오로지 목표한 음악을 향해 몸을 내던진다. 그의 몸이 향한 곳은 조금은 어둡고 축축한 세상의 그늘이다. 그곳에서 이끼 같은 음악들이 피어나고 있다. 


꽃보다 낮은 곳에서 숲의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끼. 그의 음악도 차트보다 낮은 곳에서 인간의 꾸밈없는 본래의 감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1. 毒酒 독한 술 / 酒 홀로 마시는 술


반갑습니다 렐릭님!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힙합 음악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27살 렐릭(Relik)이라고 합니다.


닉네임 'Relik'은 어떤 뜻인가요? 


고등학교 때 만든 닉네임인데, 빨간색 'Red'와 술이란 의미의 'Liquor'을 합쳐 만든 거예요. 빨간색은 뜨거운 피, 정열, 젊음이라는 키워드가 담겨있고 술은 활력, 흥분의 의미가 있잖아요. '나의 피는 술이다'약간 이런 느낌으로 이 두 단어를 합쳤어요. 'Red Liquor'를 빠르게 읽으면 '렐릭커'라고 읽혀요.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다 보니 Relik이 되었어요.

렐릭님의 음악을 들으면 락(Rock)적인 요소가 한껏 묻어있는 게 느껴져요. 평소에 락을 자주 들으시는 편인가요?


저에게는 약간의 힙스터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에 끌릴 때가 많아요. 중-고등학교 시절의 힙합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힙스터 중에 힙스터였죠. 그런 기질 때문에 락도 접하게 됐어요. 슬립낫(Slipknot), 린킨파크(Linkin Prk),  뮤즈(Muse)의 음악을 들었어요. 특히 슬립낫이라는 밴드는 정말... 무지막지해요. 무지막지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와요. 밴드원 9명이 전부 다 괴기스러운 가면을 쓰고 나와요. 음악도 엄청 파괴적인데, 보컬도 파괴적으로 노래를 불러요. 처음 보고 아찔했습니다. 그 신선한 충격이 너무 좋았어요. 우리나라에선 유명하지 않지만, 메탈계에서는 아이돌이죠.


직접 가사를 쓰고, 비트를 찍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가사를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중3 때였는데 스나이퍼사운드, 소울컴퍼니, 빅딜, 지기펠라즈 등 정말 많은 소속사 혹은 크루에서 앨범들이 쏟아지던 해였어요. 미친듯이 다운받아 MP3에 넣고 끊임없이 들었죠. 네이버로 가사를 찾다가 '라임이란 이런 거다'하면서 누군가가 라임을 빼곡하게 표시해둔 지식인을 보게 됐어요. 그게 화나와 칼날의 가사였는데 라임이 정말 화려했죠. '나도 이렇게 한 번 써 볼까?'하고 라임 떡칠 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웃음). 제 나이 또래에서 '힙합을 한다' 하면 다들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고등학생 때 무작정 비트메이커 역할로 크루에 들어갔어요. 실력이 꽝이었는데 어떻게든 들어가서 마스터키보드도 없이 FL스튜디오로 비트를 찍었어요. 20살에 본격적으로 미디를 독학하면서 제대로 된 음악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독학... 음악을 혼자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방구석 래퍼였고, 남들에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멋진 놈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이 힘들었거든요.


맞아요. 20살 여름방학에 음악을 하는 것 때문에 어머니와 싸우고 무작정 집을 나와 연습실로 들어가 자취를 했어요. 잠자는 공간도 따로 없었고 화장실도 열악해서 잘 씻지도 못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면 한창 놀 시기인데 저는 이유 없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최대한 빨리 음악으로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는 데에도 잘 끼지 않았어요. 그 친구들은 취업만을 생각하고 있고, 저는 생뚱맞은 음악을 하겠다고 하니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구요. 자연스럽게 학교 사람들과 멀어지게 되면서 스스로 혼자가 됐어요. 많이 외로웠죠. 돈이 없으니까 알바를 하면서 생활했는데 그땐 그 생활이 너무 고단했어요. 삶의 가장 짙은 암흑기였던 것 같아요. 1.5평 되는 햇빛 하나 안 드는 지하방에서 페이스북을 쭉 보는데... 다들 잘 놀면서 살고 있더라구요. 괜한 우울함에 계속 갇혀있었어요.

근데 어느 겨울에 알바를 마치고 연습실 문을 딱 열었는데, 왠지 모를 편안함과 안도감이 들었어요. 정말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는데... 싸구려 인프라소닉 모니터 스피커랑, 싸구려 다이나믹 마이크가 고작인 그 연습실을 보면서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치 신의 계시처럼. 미래를 봤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네요.


#2. 뚝심


그런 시기에 음악이 나와서 일까요? 첫 믹스테이프 제목이 'Embryo Of The Melancholy'예요. 뜻이 '우울의 태아'. 맞나요?


직역하면 그런 뜻이 맞아요. Embryo는 수정체 정도의 초기단계 태아를 말해요. 그래서 저는 '우울의 씨앗'이라는 느낌으로 앨범 제목을 만들었어요. 제가 그 연습실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우울함이 잔뜩 묻어있어요. 수록곡이 12곡 정도 되는데 대부분의 가사나 감정이 제 자신에 대한 좌절감, 열등감, 조바심이에요. 모든 곡의 비트와 작사, 믹싱을 제 스스로 했는데 한 트랙에 녹음한 횟수가 100번이 넘을 정도로 무식하게 작업했죠. 이런 작품을 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네요. 지금 들어보면 퀄리티 면에서나 실력 면에서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지만, 앨범의 무드나 진실함은 지금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어서 두 번째 믹스테이프. '19 and Life'를 내셨어요. 어떤 컨셉의 앨범인가요?


열아홉 살. 학창 시절 쓰던 가사들을 가지고 만든 앨범이에요. 비트는 따로 만들지 않고 기존에 있는 비트를 사용해 진짜 믹스테이프의 형식으로 만들었죠. 노트에 묻혀있던 가사를 끄집어내 녹음을 하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어요.


19 and Life 수록곡 중에, Underground라는 곡이 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낸 싱글에서도 Underground라는 단어를 언급하셨구요.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나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언더그라운드는 제 꿈이었어요. 그때 당시에 있던 홍대의 지하 공연장들, 소울컴퍼니, 빅딜, 힙플쇼 등등.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 것들이 많았죠. 그것들을 보고 꿈을 가졌었는데, 지금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사라졌죠. 쇼미더머니가 한몫을 한 것 같아요. 원망하거나 탓하지는 않아요. 시대의 흐름이니까... 이게 어느 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대잖아요. 맘 한구석엔 언더그라운드라는 게 다시 일어나길 바라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예전엔 공연으로 이름을 알리고, 공연 포스터 붙이러 다니고, 믹스테이프를 공 CD에 구워서 길거리에서 나눠주기도 하고... 지금은 정말 많이 바뀌었죠. 사운드클라우드, 인스타그램, 유튜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포맷이 많아졌으니까요. 


내년 4월이 되면 날이 풀리니까, 버스킹도 계획하고 있고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 운영도 계획 중이에요. 1인 미디어 시대잖아요. 홍대에서 공연도 하고 싶지만, 공연이 많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워요.

세 번째 믹스테이프, ASURA. '아수라장'이라는 말에 쓰는 '아수라'가 맞나요?


네 맞아요. 인도 신화에서 아수라는 요괴예요. 싸움을 좋아하는 호전광이죠. 이 믹스테이프에 주로 나오는 내용이 사회를 꼬집는 가사들이 많아요. 제가 제 가사로 세상을 헤집고, 비판하는 그런 의미에서 ASURA라는 제목을 썼습니다.


요즘 음원들은 싱글, 아니면 3~4 곡 정도의 EP가 주를 이루는데 렐릭님의 전 작업들이 평균 10곡이 되는 앨범 형식으로 음원을 만드셨어요.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나요? 


일단 크게 컨셉부터 잡아요. 그다음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와 주제를 정하고 몇 곡을 할 건지, 각 곡의 주제는 무엇이고 제목은 무엇인지 정하죠. 가사 쓰기에 돌입하고 가사를 다 쓰면 녹음 작업에 들어가요. 모든 곡이 녹음이 된 후에 믹싱을 시작해요. 한 곡씩 작사, 녹음, 믹싱을 따로 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구요. 확실히 싱글이나 EP보다 제작 기간이 길고, 많은 메시지를 담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만 내고 난 후에는 뿌듯하고 많은 게 남는 기분입니다.


아수라를 내신 다음, 싱글 '벗겨'를 끝으로 3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으셨어요. 군대도 다녀오셨을 테고, 또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사실 군대에서 믹스테이프를 하나 계획했어요. 전역하면 바로 만들 심산으로 10곡 정도의 가사를 써놨죠. 제가 말년휴가를 50일 정도 나왔는데 휴가기간 중에 준비하던 믹스테이프를 엎었어요. 비트를 못 만들겠더라구요. 군대에 있으면 미디 작업을 못하잖아요. 감을 완전 잃은 거죠. 전역을 하고 '음원을 내야 해!'라는 억압을 좀 내려놓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했어요.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마음을 다잡았고 더 열심히 살 궁리를 했죠.

3년이 지난 후 싱글 'Lisa'가 나와요. 한 여인을 바라보고 쓰신 것 같은데, 곡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리사는 사람과의 관계,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쓴 곡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고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잖아요. 그게 자신의 처지일 수도 있고 혹은 단순히 마음의 탓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컨트롤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쓴 곡이에요. 그 대상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제 꿈이 될 수도 있겠죠. 제가 가사를 좀 어렵게 써놔가지고...(웃음)


약간은 어려울 수 있는, 시적인 가사가 신선하게 느껴지면서도 '어?' 하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그 거부감이 나쁜 게 아니라 어떤 불편에서 오는 느낌이었어요.


제 장점이자 단점이죠. 그 불편은 거부감일 수 있는데, 제 가사의 주된 포인트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 거든요. 대중들은 메시지를 강하게 품은 가사들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저의 많은 곡들에서는 사회를 꼬집고 '그렇게 살지 마!' 하는 뉘앙스가 풍겨요. 제가 약간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웃풋이 비판적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본성이 악한 건 아니에요(웃음).

메시지가 강한 가사와 힙합비트에 배어있는 헤비한 락의 감성. 어떻게 보면 비주류의 음악인데, 이런 음악 스타일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딱히 고집한 적이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에 영향을 받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할 뿐인 거죠. 대중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열광한다고 해도 '나는 내 음악을 할 거야'라는 생각이에요. 어떤 계산도 하지 않아요. 대중적이든, 비대중적이든 어쨌든 음악이 좋으면 듣게 되잖아요. 계속해 발전해 나가야죠.


Lisa는 렐릭님의 감성적인 면을 담은 곡이라 하면, 가장 최근에 나온 'Microphone Predetor'는 렐릭님의 메탈적인 스타일이 담긴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랩 톤을 다양하게 갖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짧은 시간에 스타일이 완전 다른 두 곡, Lisa와 Microphone Predetor를 보여준 거예요. 

기존의 곡들에서는 낮은 톤의 울림 있는 목소리였고, Microphone Predetor는 찢어지는 스크림 창법으로 확 바뀌었어요. 갑자기 톤을 바꾸기 어렵지 않으셨나요?


20살에 연습실에 있을 땐, 연습실이지만 소리를 크게 내면 옆방에 들릴 수밖에 없는 시설이었어요. 옆방에 피해를 안 주려고 적당한 발성으로 랩을 했어요. 톤을 크고 강하게 내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죠. 그러다 군대에 입대했어요. 아시겠지만 군대에서 소리 지르는 일이 많잖아요(웃음). 제 목소리가 소리를 지르면 갈리는 소리가 나는 걸 알게 됐죠. 뜀걸음 중에 군가도 많이 부르고, 또 부대 안에 있는 노래방에 자주 갔는데 거기서 랩을 엄청 했거든요. 그때 이런 찢어지는 톤의 기초가 다져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메탈 쪽을 많이 듣다 보니 그런 창법이나 톤에 자연스레 익숙해졌고 따라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지금의 톤으로 집에서 녹음을 하시려면 무조건 방음이 필요하시겠네요.


저의 랩 스타일이면 소음을 걱정 안 할 수가 없죠(웃음). 전역 후에 어느 클럽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리허설을 하는데 보통 공연자들은 사운드 엔지니어한테 자기 목소리를 키워달라고 해요. 근데 엔지니어 형이 제 목소리는 줄였다고 하더라구요. 그 정도로 제 랩 하는 목소리가 큰가 봐요. 뮤지쿠스에서 Microphone Predetor를 녹음할 때 이웃집의 어떤 컴플레인도 없었어요. 그리고, 이 집이 오래돼서 그런지 엄청 울려요. 녹음 환경까지 개선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3. 꿈 = 현실


렐릭님 인스타를 보니 '포 잡 허슬(Four jobs hutsle)'이란 말을 하셨어요. 정말 네 가지의 일을 하고 계신가요?


주중 낮시간에는 사무직 알바를 하고 있고 그 일이 끝나면 학교 수업을 들어요. 그리고 금요일, 토요일에는 PC방에서 저녁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야간 알바를 하구요. 그리고 음악까지 하고 있으니 직종이 4개가 되는 건가? 싶었어요(웃음). 그래서 포 잡 허슬이란 말을 썼습니다. 학교도 곧 끝나가고, 내년 4월쯤엔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요. 그때까지 돈을 모아서 컴퓨터도 바꾸고 새로운 장비를 들여놓고 싶어요. 이사와 동시에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거죠. 

월, 화, 수, 목, 금, 토가 빼곡하네요. 그럼 음악을 할 시간은 일요일밖에 없는 건가요?


사실 요즘은 음악을 못하고 있어요. 금요일은 아침에 사무직 알바를 하고, 저녁엔 학교 수업을 갔다가 밤에 바로 PC방으로 가서 알바를 하면 하루를 24시간 다 쓰는 거예요. 토요일 아침에 퇴근을 하고 지쳐서 잠들고 눈뜨면 다시 PC방에 출근해야 하는 저녁. 토요일 PC방 알바를 마치면 일요일 아침 8시. 자고 일어나면 일요일이 사라져 있죠.


힘들지 않으신가요?


힘들죠.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단, 제 시간이 없는 게 힘들어요. 친구들이랑 술 한잔 할 시간도 없다고 봐야 해요. 보통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약속이 잡히니까. 사실 PC방 주말 알바까지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었어요. 다음 작업은 EP를 계획하고 있는데, 가사는 틈틈이 쓰고 있지만 아직 이 생활 패턴에 적응 중이에요. 

내년 4월 이사를 하시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신다고 했어요. 음악에만 전념할 생각이신 건가요?


네. 


그럼 생활비는 또 알바로 해결하게 되겠네요.


그렇죠. 또 알바를 해야겠죠? 하, 지겹네요, 진짜. 20살 때부터 알바를 너무 많이 해왔으니까요. 사실 취업도 생각하긴 했어요. 잠깐 취업사이트도 들어가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이 감히 넣을 곳이 없더라구요. 취업은 감이 잡히질 않아요. 입에 풀칠만 할 생각으로 평일이나 주말에 알바를 하면서 음악을 해야죠. 저는 이미 투잡을 갖는 걸 각오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음악이 돈이 될 것 같진 않거든요.

이런 음악 장르의 대들보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진지하고 어두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대들보!


대들보... 좋은 단어네요(웃음). 근데 저는 미래가 걱정되거나 두렵지 않아요. 집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해서? 그런 것들은 그냥 생각일 뿐이에요. 문제는 닥치면 해결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너무 먼 곳을 보면서 생각에 빠지고, 그 생각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음악으로 성공을 하든, 성공을 하지 못하든, 저는 이렇게 살겠지 싶어요(웃음).


더 좋은 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시면 되죠! 앞으로 음악적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싶나요?


저는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발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저의 색깔을 지키고 싶다는 말이에요. 지금 사회가 혼란의 시기잖아요. 그런 쪽에 관련해서도 가사를 많이 쓸 것 같아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의 음악도 해보고 싶고, 락밴드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 제가 닥터드레처럼 전담 프로듀싱을 해서 한 래퍼의 앨범을 LP정규앨범을 만들고 싶고, R&B 가수와 작업도 해보고 싶고, 음악 쪽으로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아요. 

렐릭님처럼 뚝심 잃지 않고 자신의 음악 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 응원의 말, 혹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오우. 되게 부담스럽네요(웃음). 제가 누구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가지고... 하지만 최대한 이쁘게 말하겠습니다. 음... 보통 사람들이 꿈과 현실을 구분해 놓고 살잖아요. 현실은 내가 속해 있는 곳이고 꿈은 꿈대로 따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근데 생각해보면 꿈도 현실에서 이루는 거거든요. 꿈을 택해서 꿈을 향해 나가면 그것 자체가 현실이 되는 거죠. 꿈을 향해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인터뷰 괜찮으셨나요(웃음)?


네. 이렇게 말을 많이 해본 게 정말 오랜만이에요. 제 음악 얘기를 다 쏟아낸 것 같아요. 근데 뭔가 아쉽네요. 인터뷰를 하면서 삶을 쭉 돌아보는 중에 생긴 아쉬움인 것 같아요. 아직 그렇다 할 커리어가 많지도 않고,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고... 다음에 인터뷰 기회가 있으면 그땐 인터뷰가 끝나도 아쉬움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황지우의 시 '거룩한 식사'에 나오는 사람들의 식사는 그저 음식의 풍미를 즐기는 시간이 아닌 더운 목숨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일'이다. 렐릭의 음악생활은 황지우가 바라본 식사와 닮았다. 그에게 음악은 가볍게 즐기는 유흥을 넘어 그가 지켜야 할 더운 목숨이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는 신분 이외의 3개의 일을 더 하며, 홀로 고독한 작업실에 앉아 한 파트를 수십번 녹음하며 그 더운 목숨을 지키고 있다. 누군가 혼자 하는 식사를 오래 쳐다본 것 같은 인터뷰. 렐릭의 인터뷰가 '날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지키려는 확고한 음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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