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퓰리처상 사진전
‘과거가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까?’
사진전 입구에서 내가 마주한 첫 문장이었다.
어떤 의미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치 수수께끼처럼, 혹은 이 전시 관람을 끝마쳤을 때 해내야 하는 미션처럼 느껴졌다. 자신은 없었다. 질문이 주는 무게감이 사뭇 다가왔다. 타인을 비춘 사진 한 장에 누군가가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또 다른 의문을 품으며, 나는 전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퓰리처 사진전은 나의 삶과는 굉장히 다른 장면들이 담겨있었다. 자동차나 컴퓨터, 햄버거나 파스타와 같은 이 시대의 일상에 스며들어 마치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이 여겨지던 대부분의 것들이 그곳에는 없었다.
대신, 사진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어떠한 것이 담겨있었다. 슬픔, 분노, 연민, 환희 따위의 것들이었다. 이 수없이 많은 극한의 감정들은 매일 반복되는, 편하고 단조로운 우리의 일상에서 오래토록 잊혀져 있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슬픔,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의 분노, 내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나서의 연민, 내 능력 범위 내에서만 얻을 수 있는 환희. 우리의 삶은 언제나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쳇바퀴 돌 듯 굴러가고 있으니까.
사진 속에는 수많은 전쟁과 분쟁, 사건과 사고의 현장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불덩이와 총칼을 피해 그저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하지만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지침에 아직 살아있는 것에 고통 받으며, 그런 그들을 끝내 살리지 못함에 사람들은 슬퍼하고 좌절했다. 시체가 쌓여가는 전쟁터에서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혼자서도 자라났고, 총과 칼을 장난감 삼아 놀던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날씨 좋은 날 마음껏 달리는 것만으로도 환하게 웃음 지었다.
사진전에서 머문 1시간 남짓이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 버린 느낌이었다. 지금껏 내가 쫓고 있던 것들이 과연 내 삶에서 얼마만큼 중요한 것이지 다시 가늠해본다. 그제야 여태껏 허상을 쫓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가가 시큰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질 만큼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수많은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이 떠올랐다.
사진전 입구에 적혀있던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도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거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가 다른 모습일지라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늘 변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들을 나는 그곳에서 되찾았다.
다음 퓰리처상 사진전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내가 오늘까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