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커머너다
10월의 초입에 나와 희진은 한 우산을 쓰고 '송현 숲문화공원 조성 100인 시민 토론회'의 장소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우리는 우산 속에서 기대반 우려반으로 어떤 토론회가 펼쳐질지 상상했다. 종로구 소방서의 4층에 위치한 토론장으로 가니, 마치 연회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시끌시끌한 말소리, 몇 대의 카메라,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테이블과 흰 가운으로 덮인 원탁 10개가 있었다. 우리는 배정받은대로 원탁에 흩어져 앉았고, 솔방울커머너인 상덕도 다른 원탁에 자리를 잡았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정세균 국회의원과 김영종 구청장, 유양순 구의회 의장의 인사말, 내빈 인사, 사회자의 아이스브레이킹 및 토론 규칙 안내가 이어졌다.
우리는 토론회가 끝나고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 찻집에 가서 시민 토론회의 후기를 폭풍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상투적이지만 매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언제나 유익한 일이다. 솔방울 커머너의 취지와는 다른 생각들, '번듯한' 무언가가 여전히 필요한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의 열망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그것은 씁쓸한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솔방울 커먼즈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우리는 더 많이 만나고 대화하면서 송현동의 공간을 함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희망적인 이야기는 차치하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우리에게는 굉장히 높은 장벽이 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라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국, 서울의 상황에서도 이제 이런 것들을 고민할 시기가 왔다. 아무리 토론회라는 번듯한 형식으로 꾸며졌다고 하더라도, 미리 설정된 의제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마저 제한되어 있다면 실질적인 참여가 아니라 명분을 얻기 위한 동원이 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공유하고 싶다.
1) 송현동 숲문화공원화 100인 토론회는 수요일 2시에 열린 행사. 수요일 2시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2)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데도 호명된 시민들의 정해진 역할. 구청장과 토론진행자 등은 모두 송현동 부지에 관한 어떤 것도 정해져있지 않음을 강조했다. 아무것도 정해져있지 않고 부지가 넓다는 것은 커머너들에게 기회다.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에서 '시민'들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숲공원화가 된다면 있을 법한 문제점과, 숲공원화의 개발 방향뿐이다. 실제로 이 부지를 어떻게 '시민'품으로 돌릴 수 있는지 이야기 하지 않았고, 주최측은 시민들에게 그런것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선택지 중에 무엇을 더 많이 선택하였는지, '숫자'로 표현되었다.
3) '시민품으로'의 시민은 누구일까? 토론회에서는 내내 시민과 전문가가 나뉘고, 주민과 서울시민, 관광객이 나뉘어졌다. 주민들은 이 공간에 대한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고, 세입자들의 입장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란 옵션으로 타자화된다. 관광객은 수입을 얻어주는 사람, 또는 교통혼잡이나 소음을 야기하는 객체이고, 서울시민은 주민과 관광객, 그 언저리에 있었다.
솔방울 커먼즈가 생각하기에 송현동 부지에 대한 계획과 행동의 시작은 매입이 아닌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고, 종로구나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산따내기'가 아니어도 많이 있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일을 지금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솔방울 커먼즈가 종로구를, 정부인사들과 사람들, 커머너들을 초대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종로구가 만들어주는 토론회장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토론회장으로 말이다. 그때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에, 모두에게 열려있는 의제로 만나면 좋겠다.